@김대중대통령에대해 비하하는 이유 근현대사 라이벌 민주당 - 한나라당 김구 - 이승만 김대중 -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노무현 - 이명박 한나라당
한민당 -> 자유당 -> 공화당 ->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이승만(친일청산단체해체,12년집권)-박정희(친일장교다까끼마사오,18년집권)-전두환(7년집권)-노태우-김영삼-이회창(부친이홍규일제시대황해도"검찰서기")-박근혜-이명박
민주당 독립운동가-한국독립당-민주국민당-민주당-신민당-평민당-민주당-국민회의-(구)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백범김구.안창호-이시영-신익희-정일형-장준하-김대중-노무현
한나라당이 권력을 놓친 지난10년을 뉴라이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한다 노무현대통령이 지난5년동안 당한일을 김대중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지금까지 당하고 있다고 보면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숨겨놓은 돈이 많다
김대중대통령12억 중 순수재산은4억 박정희 최소1조원-최대5조 이삭 찾듯, 참빗으로머릿속의 서캐를 속아내듯 샅샅이 훑어왔다.
전두환 5,000억 원 비자금만들어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비자금 5천억 노태우 비자금 5천억 76년국가총예산이 4600억이었다 전두환말아먹은게5천억이면 전국민이 50년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는데
*슬그머니 돌려받은 노벨상금2003-04-27기사 재산기부다 했는데 옛날기사입니다
김대중의 아태재단과 기부의 내용 - 아태재단 설립 후 재단 자체를 연세대에 통채로 기부! (재단 설립과 운영이 분리됨) - 연세대는 이 재단의 기부를 받아서 부동산에 도서관 건립(동교동 지하1층 지상5층) - 이 곳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와 같이 붙어 있지만 이 사저도 사후에는 연세대 소유가 됨 - 간단히 말하면 기부 후 운영은 연세대에서 한다. 죽으면 살던 집도 기부된다
전시시설을 보강한 뒤 ‘김대중 도서관’으로 재개관했다. ‘김대중컨벤션센터’.광주전시컨벤션센터’였던 이곳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거친 끝에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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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일부 한나라당 남북분열주의자들은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가위원들에게 돈을 뇌물로 제공하고 수상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러자 스웨덴정부는 즉각 발표했다....너희나라는 돈으로 수상이 가능한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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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박정희 1965년 한일국교정상회담 침략만행에 대한 사과가 빠진 한일협정 기본조약 12마일로 수정으로 잃은 독도
독도 념겨준 박정희의 독도밀약 내용 1965년 . - 독도 밀약 내용 - 1. 독도영유권문제는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앞으로 체결될 ‘한일기본조약’에 그 문제를 포함시키지 말 것. (이 불포함 규정은 당시 한일국교수립과정에서 이행되었다. 만일 ‘한일기본조약’에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이 명기되면, 일본정부는 독도를 영토분쟁으로 끌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간파한 일본정부는 다섯 달 뒤에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위의 불포함 규정을 관철시켰고, 그에 따라 ‘한일기본조약’에는 독도영유권문제가 명기되지 않았다.) 2. 한일 두 나라는 독도를 각기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의 영유권주장에 반론하는 경우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 (이 규정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을 부정해도 한국정부는 외교대응을 할 수 없다.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 독도침탈책동에 ‘조용한 외교’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위의 규정이 한국정부의 외교대응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3. 앞으로 어업구역을 정할 때, 한일 두 나라가 독도를 서로 자국영토로 인정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해역을 ‘한일공동수역’으로 정할 것. (이 규정은 한일밀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33년이 지난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부가 제2차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행되었다. 33년의 시차는 일본정부가 독도침탈책동을 장기전략에 따라 집요하게 추진해오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 어업협정에서 일본정부는 울릉도에 딸려있는 섬인 독도를 울릉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떼어내어 ‘한일공동관리수역’으로 끌어내었다. 그 어업협정에 따르면, 원래 독도는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해야 하는 섬인데, 한국정부가 임시로 관리하도록 일본정부가 양해한 섬으로 된다.) 4. 현재 한국이 독도를 점거한 현상을 유지하지만, 한국은 그 섬에서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시설을 증축하거나 신축하지 말 것. (한일밀약은 독도에 대한 한국정부의 실효적 지배를 ‘점거’라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독도는 한국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찰이 ‘점거’한 것이다. 경찰의 임무는 치안유지이고, 군대의 임무는 영토수호이다. 수호해야 할 영토인 독도에 해양경찰이 아니라 군대를 주둔시켜야 마땅한 데도 한국정부가 군병력을 독도에 보내지 못하는 까닭은, 위의 규정이 한국군의 독도주둔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5. 한일 양국정부는 위의 조항을 준수할 것. (한일 양국정부가 이 밀약을 준수하면, 독도영유권은 일본정부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다.) 독도영유권은 한일 두 나라가 나눠가질 수 없는 것인데도, 한일밀약은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도 인정하고 일본의 독도영유권도 인정하였다. 독도영유권을 한일 두 나라가 서로 인정한다는 규정은 언뜻 들으면 형용모순인 것 같지만, 국제법적으로는 형용모순이 아니다. 그 규정은 독도를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영유권 미정지’ 로 법적 지위를 바꿔놓은 것이다. 미국정부가 독도를 독도(Dokdo)나 다께시마(Takeshima)로 표기하지 않고 리앙꾸르 롹스로 표기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독도를 ‘영유권 미정지’로 규정한 한일밀약을 따르는 것이다. 비록 한국의 국내법이 독도영유권을 확정하였어도 국제법으로는 미정되었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이 국제관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독도영유권이 국내법적으로만 유효하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한일밀약에 따르면, 독도는 이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가 아니라, 영유권을 확정하지 못한 무국적 섬이다. 그러므로 한일밀약이 남아있는 한, 국무총리가 독도에 가서 입도기념사진을 찍고 한국군이 독도 앞바다에서 독도수호훈련을 실시하면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독도는 이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가 아니다. 어느 나라의 정부가 무국적 섬을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권침해가 아니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한일밀약에 의거하여 독도를 자국영토인 다께시마라고 주장하거나, 더 나아가 그 섬에 기습상륙한 일본자위대 병력이 울릉도경찰서 소속 해양경찰 37명을 간단하게 무장해제하고 섬을 무력으로 점령해도, 한국정부는 저들의 독도강점을 국제법적으로 영토침범 또는 주권침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박정희는 사또 에이사꾸의 간계를 알면서도 밀약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독도영유권을 포기하였고, 그 섬을 강탈하려는 일본정부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뉴스 출처: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84
월간중앙은 2007.06 19일 발매된 창간 39주년 기념 4월호에서 "한.일 협정 체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우노 소스케 자민당 의원이 독도밀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독도밀약은 한.일 협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어 졌다.월간중앙이 한국과 일본의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근거로 추적한 독도밀약은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4개 부속조항으로 구성됐다. 부속조항은 ▶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월간중앙은 "그 독도밀약은 합의 다음날 (왜병출신 쿠테타괴수) 박정희의 재가를 받았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노 의원은 그간 비밀 유지를 위해 이용하던 용산 미군기지에서 일본의 고노 이치로 건설장관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으며, 고노는 이를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사토 총리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김종필 전 총리의 친형 김종락 당시 한일은행 전무였다. 당시 김 전 총리는 한.일 협정 굴욕협상 반대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의 반 타의 반' 외유를 떠난 상태였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간주한다'는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며 "박정희 군사정부는 독도밀약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언명과 함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 서울 특파원으로 독도밀약을 위한 정일권-고노 연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시마모토 겐로(80)는 "우노 소스케 의원이 박건석 회장의 자택에서 정일권 총리에게 독도밀약 문건을 건네는 자리에 나와 김종락.문덕주 (당시 외무부 차관) 등 세 사람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월간중앙은 "한.일 두 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 독도에 새 접안시설을 건설함으로써 약속을 깬 것 외에는 거의 밀약을 준수해 왔다"고 밝혔다.
(밑에 내용은 백과사전 김영삼 부정적평가의 일부내용입니다)
김영삼 정권이 1997년 10월 일본측에서 제시한 잠정공동수역안(잠정조치수역은 독도 중간수역)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공동수역이 된 것에 대해 박정희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그야말로 ‘감정 그대로의 표출’이었다. 1월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당국자는 자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나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설정하고, 1997년 1월1일을 기해 시행에 들어갔다.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있다” 양국간 배타적경제수역 경계획정 문제가 힘든 상황이었다. 칼자루를 쥔 쪽은 명백히 한일간 동시에 판을 깰 경우 우리 어민들이 3월 6일부터는 경계획정 문제와 어업문제를 어업실무자 회의에서 동해의 독도를 포함한
해결을위하여 어업협상을 EEZ 경계획정 문제와 분리하여 EEZ 경계획정시까지 양국의 연안수역을 배타적경제수역으로 하고, 가운데에 중간(잠정)수역을 설정하는 잠정적성격의 어업협정 체결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김대중정권에 이르러 잠정수역의 경계선을 상대국 해안 35해리라는 데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김영삼정권말기인 97년 10월 당초의 한일간의 EEZ경계선확정이란 방침에서 후퇴하여 시급한 어업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어업협상을 EEZ 경계획정 문제와 분리하여 EEZ 경계획정시까지 양국의 연안수역을 배타적경제수역으로 하고, 가운데에 중간(잠정)수역을 설정하는 잠정적 성격의 어업협정 체결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김대중정권에 이르러 잠정수역의 경계선을 상대국 해안 35해리라는 데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어업협정 체결할 당시의 한국의 경제적인 상황을 이용하려했던 같습니다. 그리하여 어업협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지 않자 한국이 IMF 구제금융하에 있는 1997-98년 일방적으로 어업협정을 파기함으로써 강력하게 대응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박정희의 독도밀약때문에 한일어업협정을 했고 한일어업협정은 김대중 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였다
김대중 때 어업협정은 이미 김영삼 때 하시모토 총리와 제주에서 독도 영유권과 어업협정을 분리하기로 했고 울릉도 기점을 하기로 합의까지 한 것을 이어 받아 약속 지킨거다. 더욱이 김대중 정권 때 맺은 신어업협정은 3년 의무기간이 노무현 때 끝났다. 지금은 자동연장 상태다. 즉 이명박이 일방 파기 통보만 하면 파기된다,
@ - 요약 - 미정이라는 이야기다 또 하나 신어업협정은 그 시효가 http://cafe.daum.net/chaeunnim/1ccR/220?docid=zTss|1ccR|220|20060419184401&q=%B1%E8%BF%B5%BB% EF%20%B5%B6%B5%B5%20eez&srchid=CCBzTss|1ccR|220|20060419184401 前 해수부장관 "新한일어업협정 수정, 실효성 없어" 신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던 1998년 당시 해수부 항만정책국장을 지낸 최 전 장관은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협상을 다시 한다고 해도 일본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또 다른 마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 한일어업협정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5년 간 진행되다 김대중 정부 들어 마무리 된 것"으로 "독도 영유권을 훼손했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최낙정 전 장관은 또, 독도가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한일중간수역에 놓인 것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어업협정은 영토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최 전 장관은 "신 한일어업협정 조문에서 이 협정은 영유권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헌법재판소나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어업협정은 어업 문제에만 국한됨을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98017
박정희는 정권연장을 위해 군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등 개인패해 청구권포기 한일협정과 도독밀약을 한다 독도밀약때문에 한일어업협정을 했고 한일어업협정은 김대중 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였고 IMF경제상황을 일본이용한 것이다 이 협정의 시효는 2001년까지이면 어느한쪽이 파기선언하면 무효가 가능하다
박정희는 정권유지를 위해 한일협정을 한다
박정희 1965년 한일국교정상회담 침략만행에 대한 사과가 빠진 한일협정 기본조약 12마일로 수정으로 잃은 독도
박정희는 정권유지를 위해 한일협정을 한다 일본에 피해청구권을 포기한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4893835
박정희 - 친일만주군장교 조선의용군 소멸 토벌,5.16쿠데타,언론장악,부산마산항쟁,하나회,지역감정조장,선거조작,대북 밀사를 통해 북한에 돈을 갖다주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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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
대북지원 규모 관련 설명자료 □ 최근 국내 일각의 ‘8년간 8조원 대북지원’ 주장은 사실과 다름. o 8조원이라는 금액은 인도적 대북지원 이외에 일반적으로 대북지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정상적인 상거래행위, 경수로분담금, 개성·금강산사업 투자액을 모두 포함하여 과대 계상한 것임. * 8조원 지원 주장내역 : △대북지원 4조 5,885억원 △경수로분담금 2조 1,690억원 △대가지불 약 9,800억원(9억 8,181.5만 달러) △개성·금강산 투자액 5,990억원 o 실제 국민의 정부 이후 지난 8년간 대북지원액은 2조 3,003억원이며, 이 또한 모두 현물로 지원되었으며 현금지원은 전혀 없었음. □ 대북지원액에 국내 농가 지원을 위한 양곡관리특별회계 지출 o 남북간 식량차관 계약시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고, 국제시장 쌀 가격(톤당 330$)이 국내산(톤당 174만원, 1,783$)의 1/5수준으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해외구매가 유리하나, 국내산 잉여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 △국내쌀 과잉 재고 해소 △국내쌀 공급과잉으로 인한 국내쌀값 하락 방지 △매년 보관 관리비용 지출 부담 절감 등 국내 농가 지원 차원에서 농민단체 및 농정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임. - 따라서, 외국산과 국내산 가격 차이에 따른 양특회계 지원분은 대북지원비용이 아니며 국내농가 지원 비용임.
o 경수로 분담금은 ‘94년 10월 제네바합의 이전 김영삼 대통령이 약속(’94.9)한 사항으로, 국민정부·참여정부는 이러한 약속에 따라 경수로 비용을 집행하였음. o 경수로 분담금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추진한 사업비용(국제기구인 KEDO에 지불)으로 북한에 지급된 것이 아니며, 상당 부분의 경수로사업비는 한전 등 우리 업체에게 지급되었음. □ 금강산 관광대가 등 9억 8,181만불(약 9,800억원)은 정상적 경제행위에 따른 대가지불로서 대북지원과 성격이 다름. o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사업 등은 민간기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자신의 이윤창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경협사업으로 이에 따라 이루어진 대가지불은 정상적 상거래 행위로 통상적 대북지원이 아님. - 관광 대가의 경우, 관광에 따른 입장료와 관리비용으로서 중국 등 외국인의 경우에도 북한 관광시 요금을 지급하고 있음. □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사업 투자액 5,990억원도 대북지원과 무관함. o 동 투자액은 해당지구 기반시설 건설 및 공장 등 건물건축, 각종 설비투자 등에 소요된 비용으로 북한에게 지원한 것이 아님. * 개성공단 투자 : 입주기업 공장건축 등 투자금, 부지조성공사, 기반시설공사, 전력·통신 구축, 편의점 등 기타 시설 투자금 * 금강산 관광사업 투자 : 온정각·부두시설·해상호텔 등 현대아산 직접투자, 골프장 등 36개 협력업체 시설 투자금 o 국민의 정부 이후 대북지원 규모는, 정부 차원에서 쌀·비료 등 현물로 1조 7,005억원, 민간차원에서 현물로 5,998억원 등 총 2조 3,003억원 상당의 현물임. ※ 국제사회(한국 제외)는 ’95~’05년간 23억 6,133만$를 북한에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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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및 금강산 사업은 89년 노태우 정권때 현대 고 정주영 회장이 북한과 직접 체결한 사업이고 그 당시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 찬성 승인한 사업입니다 중국에 퍼주는것이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태우정권 때 노태우가 구 소련(러시아)의 고르바초프를 제주도에서 딱 30분간 만나고 30억 달러를 소련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 때 당신들은 소련에 퍼 준다고 욕을 했는가?
3년째인 1995년 6월부터 지원을 시작한 경수로 공사 중단 요구에 따라 천문학적인 백과사전내용 부정적평가내용 )
연평균 대북 정부지원 문민정부(김영삼 신한국당)때 더 많아 김영삼 대북지원: 쌀 15만톤+ 경수로:4조 3천억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310/200310050024.html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야욕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1971년 9월 20일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개최되었다. 미국 CIA 1994년 의회 보고서에는 "북한은 1992년 이전에 핵개발을 끝냈다"라고 돼있다. 이용한 핵무기가 상당수 만들어져 있다.대답했다
▶서독은 20년 동안 동독에 평균 32억불을 매년 지원했다.우리는 13년동인 매년 1억 5000만 불을 북에 주었다.이것은 1인당 연간 5000원을 모아 북한을 도운 셈이다. 동안 안보 불안 없이 살아온 것이다.
북핵이 타결되어 대북 전력지원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져야할 부담은 최소 6.5조에서 최대 11조 사이로 예상되는데 , 한국 리스크 감소 국가신용등급 향상으로 인한 왜채 이자 경감 등으로 우리가 입게될 경제적 이득은 120조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퍼주기’도 안 되지만, ‘굶겨 죽이기’도 안 된다는 점을 서로 인정했으면 한다. 쌀값 때문에 이만 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햇볕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겨레신문 일부 내용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무기 2~3개를 만들 이를 거절했다 한다. 그 뒤 사실상 재래식 무기로는 도저히 남쪽의 적 번영을 위해서 햇볕정책은 남쪽의 ‘
연평균 대북 정부지원 문민정부(김영삼 신한국당)때 더 많아 김영삼 대북지원: 쌀 15만톤+ 경수로:4조 3천억
대북지원 : 김대중1조5천억 노무현2조
대북송금 ;김영삼경수로4조3천억(36억 달러)김대중정부 1조5000억원, 노무현정부 1조6000억원, 현 이명박정부 임기절반인
대북지원금 이명박 2010년6월까지8600억원 = 5조1천600억원이상
▶국방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시절의 세계가 혀를 내 두룰 정도의 놀랄 만한 명품 무기들 을 수도 없이 개발 해 냈다는 것 1)현무 크루즈 미사일 개발 :세계에서 3개국밖에없는 사거리 500키로 1000키로1500키로 완료 배치 탄두 500키로그램,,,, 우리가 지금 중국 전 내륙을 강타할수 있는 3천5백키로 현무 크르즈미사일 을 개발 중 김대중 노무현의 영원히 빛날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죠(일본은 아직 개발 못했음),,,,명중 정확도 1~2메타(미국 것 보다 명중률에서 앞서고),,,,마하1,5~1,7 속도로 아주 낮게 물위를 스치듯 지나고 높은 산을 넘고 모든 물체를 요리저리 피하고 나아감 (일본 전지역 강타 일본과중국이 개발 하려고 안간힘씀)
하나로 300개 동시 강타 할수 있고요 적 의 항공기요격 시스템 하푼 미사일과현무 크루즈 미사일 2백90발을 기본으로 장착 그리고 어뢰32발 장착,,,,,등등 보안상 더는 말 할수없음 아무튼 김대중 노무현의 위대한 업적 임
특징은 물위를 날아서 적의잠수함이나 배가 도망갈 시간을 안줌 명중률 또한 세계최고이고세계에서 유일 무일 한 무기로써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 의 치적임
연발 장착 함 적의 표적을 자동으로 계산 함 사거리는 43키로 살상 반경 100미터 세계에서 곡사포중 가장 멀리나감 그다음 독일 에서 개발 했음 독일 곡사포는 37키로 전세계에서 한국과 우리나라밖에 없음 세계 유일 한 무기로 김대중 노무현의 치적임
달리면서 발사경사 65도 가뿐히 주행 또한 적의 유도탄 교란 장치가 있으며 저공 비행기는 한발에 아작 낼수 있는 자동 감시체계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의 업적 임
다님 중국과 소련 일본 프랑스 도 아직없음 오직 미국만 있음 그다음으로 우리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 업적
활용미국 마틴사와 협력했음
수류탄 처럼 적의 상황을 보면서 발사할수있음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 업적 이다,,,,,이명박 정권에서 발표함 역대 대통령 중에 이 두분이 가장 한국의 국방을 튼튼 히 한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병력
김대중 6·25전쟁의 와중에서는 해상방위대 전라남도지구 부대장 해군목표경비 부사령과 겸 위수사령관 재직 (정식군인이 아니고 해상방위대 민병대) 6.25전쟁때 공산군에 붙잡혔다가 총살 직전에 목표교도소를 탈출했고 박정희는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조선의용군토벌(110여회참여) 하다가 국내에 들어와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근무하면서 군내 남로당 당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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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계명 그 당시 창시계명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할머니들중에게 물어보세요 창시계명했는지 안했는지
친일청산은 대한민국독립되었을때 처음 했지만 이승만이 친일청산단체를 해산시켜 실패하고 박정희 전두화 노태우 김영삼도 하지 않은 친일청산작업을 김대중대통령이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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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어록 왜곡 보도들
조중동은 김대중의 발언을 왜곡하지 마라!
노무현 2007 신년연설 그리고 조중동
김대중 정권 때 부동산성장을 과열로 왜곡보도했던 조중동
조중동 틈만 나면 왜곡 과장, 날만 새면 파문, 파장
김대중,노무현이 이런 말을 했을경우 조중동은 1면에 틀림없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전두환 언론 우상화 전두환 언론우상화 2007년 6월 9일 방송된 KBS <미디어 포커스>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내용 언론사 통폐합하여 신격화했다 전두환 장녀결혼 방송 2시간30분분량 경향신문 전두환 새역사창조자로 기사에서 신격화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으로 묘사 신격화 1년당위로 방영 kbs뉴스20분간 전두환퇴임 전두환찬양 MBC전두환 위로파티연예인들 큰절 전두환51회 생일축하방영 언론에 보도지침보내고 언론사에서 제일중요한일 드라마나 재미있는 방송 편집해서 전두환에게 보내는 것 http://cafe.daum.net/kyongkim/FQ14/3200?docid=cY0N|FQ14|3200|20101026211054&q=%C0%FC%B5%CE%C8% AF51%C8%B8%20%BB%FD%C0%CF%C3%E0%C7%CF&srchid=CCBcY0N|FQ14|3200|20101026211054 대구공고, 전두환 만수무강 큰절 기원하고 강연 수익’으로 벌어들인 300만원벌어 1672억 중 300만원 납부 전두환 (일해)공원 68억원들여 일해공원은 경상남도 도비 20억원을 포함, 총 68억원이 건립에 투입되었으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황강 주변 5만 3724m2 부지에 준공하고 합천 일해공원 전두환 친필 표지석 논란 6500만원 혈세 들여 설치한다고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jeolla/view.html?cateid=100009&newsid=20081229175706770&p=khan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연평해전
먼저, 대통령이 북한의 눈치때문에 축구나 보러갔다입니다. 그리고 한일정상회담도 바로 있었구요. 우리가 손님을 부른 자리이고 남북관계에 의심이 많던 상황에 오히려 참석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게 보았겠죠. 당연히 가는 자리였습니다. 두번째, 왜 이렇게 낮은 보상금을 유가족에 주었는가? 김대중정부시절의 연평해전은 두번이 있었고 첫번째는 피해가 없었고 두번째인 2002년에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국회회의록에 나온 보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 □서해교전 전사자․전상자 보상내역 <전사자> ○전사자(6명)에게는 개인별 총 4억 4100~4억 4700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유족에게 매월 68만 6000~82만 1000원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군인사망보상금(3100~3700 만 원), 보훈처장위로금(1000만 원), 국민성금(4억 원) <전상자> ○전상자(4명)에게는 개인별 총 4200~1억 5400 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부상자에게 매월 21만 7000~80만 8000원 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장애보상금(500~700만 원), 보훈처장위문금(300만 원), 국민성금(3400~1억 4400 만 원) " 정부가 지급한 전사자에 대한 보상금은 3천만원인데 이 근거는 박정희때 만들어진 법령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사자에게 일인당 지급한 금액의 나머지 4억원은 성금으로 들어간 점에 지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박정희가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많은 보상금이 지급될 것을 염려하여 만든 헌법의 이중배상금지때문입니다. 그래서 편법인 국민의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된 것입니다.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쩔수 없었던 것이죠. 만약 보상금형식이 되면 소급적용되면서 아마 국가예산이 엄청나게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성금형식으로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은 나중에 법령을 노무현정권때 바뀝니다. 그래서 천암함과 이번 연평도의 북한의 만행의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전사자에게는 훈장조차 없었다?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에게 1명에게는 충무공훈장, 그리고 나머지 장병에게는 화랑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이것도 조중동의 농간이죠. 그럼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국군전사자에게 어떠한 처우를 했는지 보시죠. http://gall.dcinside.com/list.php?id=military&no=729538&page=1&bbs= 96년 강릉침투 (김영삼 정부) : 부상자 자비부담 치료. 승진심사 탈락으로 당시 부상자 대부분 전역처리. 99년 1차 연평해전 (김대중 정부) : 승리. 사망자 없음 02년 2차 연평해전 (김대중 정부) : 승리.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 전사자에 대한 법령이 없었음. 1계급 특진 및 충무무공훈장, 보상금 약 4억5천(성금 포함) 04년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 국인연금법 개정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2억원의 사망보상금을 받을수 있도록 개정. 지금 천안함 침몰 사망자도 이 법에 의해 보상금 받는 걸로 알고있음.). 참고로 연평해전 사망자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연금액 높혀받음. 10년 천안함 침몰 (이명박 정부) : 04년 개정안으로 전사자 처리. 1계급 특진.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보다 격이 낮음) 보상금 약 5억(성금 포함) 네번째, 연평해전의 관련 장교들은 나중에 강제제대시켰다? 연평해전당시 장교가 후에 제대가 되었다고 나온 것은 담당 사령관이 자신이 그러한 피해를 당했다고 조선일보 와의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시각은 그사람이 해군총장을 노렸으나 다른이가 되자 일부러 그랬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무현 정권당시 노통이 직접 부상치료후 복귀한 장교에게 전화로 격려했다는 점을 통해 관련장교들에게 피해를 줄 이유가 없고 정권차원에서 오히려 그들을 정권의 안보대처에 좋은 선례로 남길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부러 정권에서 제대시킬 이유는 없었습니다.
#해고된 박정선제독 조선일보와 인터뷰(조중동은 믿지 못할 언론)
조.중.동은 과연 언론인가?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A4%91%EB%8F%99
조선일보에서 한명숙 5만달러 받았다고 허위사실유포
방상훈(조선일보 사장) 일제 식민지 시대때부터 역사왜곡 언론왜곡,가장 대표적 민족반역 친일신문.방상훈의 부인도 민족반역자(친일파)윤치호 손녀.끼리끼리 결혼.조선일보는 원래는 민족지였으나 민족지 조선일보가 일제에의해 폐간된후 민족반역자 친일파 방응모가 일제의 도움으로 조선일보를만듦. 김학준(동아일보 사장) 조상 민족반역자 고려대학교창립자 - 독립운동가 애국자를 가장한 "김성수"의 후손임. 민족신문이라고 지금까지 떠벌리고 다님.나라팔고 민족팔면 민족신문인가 봄.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만든 신문이었으나 일장기말소사건을 계기로 일제의 억압과강압에 의해 폐간된후.일제협력자 김성수가 다시 개간함.민족반역신문 홍석현(중앙일보사장) 일제시대 경주지법 판사를 지낸 친일파 홍진기,친일인명사전에도 등록되어있는 악질친일파, 해방후친일에서 친미로 변신,대한민국 역사상 42세로 최연소 장관을 지냄,홍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력히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진기 전 법무부장관은 4·19 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특사로 풀려났다. 검찰, 홍석현씨 소환통보 이 더럽고 역겨운 친일파신문들이다 다섯번째, 김대중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김대중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고 월드컵결승경기로 방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도 이점이 많이 의아했는데 찾아보니 이런 관례가 있더군요. 서해교전 영결식은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주관하는 사람보다 높은 계급의 군인들은 참석안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강릉 무장공비때는 육군참모총장주관이라 육군총장만 참석한 것처럼요. 여섯번째, 김대중이 바뀐 교전수칙으로 인해 희생이 컸다?? 교전수칙은 97년 유엔사를 통해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99년 1차연평해전에서 승리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이구요. 그것이 2차연평해전, 즉 서해교전후 희생이 생기면서 변경되게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맘대로 교전수칙을 바꿀수 없습니다. 우리한테 그런 권한도 없죠. 저는 김대중정부가 과도하게 제2연평해전으로 욕을 먹는 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비추어 비교해보면 확실히 대우를 해주고 좋은 선례를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정권교체 6개월전에 터지고 보상금을 지급했고 다른 행사를 할 시기가 없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욕먹는 것은 조장되었다는 느낌을 버릴수 없네요. 흔히 가스통할배들로 불리는 고엽제피해용사들에 대한 지원도 과거 정부에서는 생각도 못하던 것을 시작한 것은 김대중정권이고 또한 처음으로 6.25전사자유골발굴단을 만든 것도 김대중 정권입니다. 빨갱이라고 불리는 김대중이 빨갱이를 죽인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고 제대로 안장하는업을 시작한 것이죠. imf로 인해서 군 전력보강계획이 수포로 돌아갈려고 할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실행했습니다. 그래도 군에 있어서는 가장 존경받아야할 대통령입니다. 군출신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못한 것을 군인들을 위해 한 것이 김대중입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역감정
◎대한민국최조로 지역감정조장한 사람은 박정희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3년에 전두환불러 박정희가 전두환회장으로 하여 노태우 김보성등 경상도지역군인중심으로 구성된`하나회` 만든다
과거 천년동은 전라도 지역은 호남벌, 호남 평야를 중심으로 다른 어떤지역보다도 부유 했고 인구도 많았으며 고려 왕족의 모계이며 또 고려와 조선시대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고려, 조선 왕조는 대체적으로 전라도인들이 지배한 사회였고. 양반들은 주로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많았으나 박정희의 지역감정조장이후 거의 발전을 못했습니다 전두환 경상남 도합천군 노태우 경상도 대구 박정희 경상북도 선산군 김영삼 경상남도 거제 이명박 고향 경북포항흥해덕성리 태어난곳일본오사카만3세경북포항귀국
전두환 정권 동안 영남 출신이 장관에 33.0%, 고위 관료에 41.2% 임명되는 등 영남 편중 인사와
김영삼 '우리가 남이가' 지역주의로 당선되고 경제를 모르니 맡기긴 했는데
"MB정권 이후 '형님' 지역 10조원 챙겼다"
'형님' 이상득 예산 논란…"포항, 3년간 조 단위 넘어"
형님예산 안 부럽다 '마산예산'…영남예산도 큰 폭 증가
옛날 언론에서는 호남사건사고을 지역을 발키고 영남사건사고는 지역을 발키지 않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등 호남을 나쁘게 표현했었죠
순이익많이 나는 인천공항을 매각하고 밀양에 신공항을 짓는다고 했었죠 전두환 고향과 경상도대부분지역은 무상 급식한다고 합니다
전라도 무주가 양보해준 세계육상대회 강원도 평창유치한다고 했는데 지금 대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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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아들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이 해 놓은 많은 공적들이 임기말기에 몇몇사건으로 빛을 발해썻죠 노무현대통령은 임기 말기에 비리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김대중대통령도 아들들의 게이드에 연루되어 임기 말이 불행했습니다 김대중대통령 큰아들 김홍일 그가 풍채가 좋았던거쓴 전기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과 함께 호르몬 분비 이상이 나타나서 몸집이 불었서 그렇게 커졌던거죠 대부분의 민주화 운동가 집안이 그랬듯 그들도 가족 전체가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김대중의 아들인 김홍일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죠. 면전에서 자기의 아버지를 조롱하고 욕하는 자들에게 끔찍하게 고문당하는 것을 참아야 했습니다. 거짓으로 아버지에 대한 죄를 실토하면 그걸 카메라로 찍어서 이용할려고 준비까지 하고 있는 자들에게 말이죠 결국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를 더 심하게 고문합니다. 신경을 손상시킬 정도로요 이미 한참 전부터 파킨슨병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김홍일 의원이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그가 말하거나 거동하는 것을 TV에서 본 사람들이 거의 없을겁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부축을 해야만 걸을 수 있는 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언론들이 감춰준거였죠 고문후유증으로 평생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큰 아들 김홍일, 아버지 때문에 역시 권력의 탄압을 받고 평생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갖지 못하다가 겨우 국회의원 한번 해 본 둘째 아들 김홍업, 어린 시절 권력에 납치되고 고문받던 아버지를 본 옆에서 지켜본 충격으로 거의 자폐아나 다름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유증으로 평생 힘든 삶을 살았던 막내 김홍걸. 많은 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 가족사의 저런 비극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몇몇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저들이 무슨 엄청난 비리라도 저지른 것으로 지금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아들들과 노무현대통령비리사건이 왜 임기 말기에 생겨는지 진상을 확실이 더 조사했스면 합니다 문국현대통령후보는 의원직상실당하고 한명숙장관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6.2 지방선거 이전, 이른바 ‘5만 달러’ 수수 혐의로 기소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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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주장대로 서울~강원 간 고속도로가 우선 만들어졌다면? 교양역사서 <타르타르스테이크와 동동구리무>를 펴낸 정창수 박사는 “강릉은 대도시가 되어 있었을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개발 반대론이라기보다 차선론이었고, 둔갑한 ‘조작된 기억’이라는 1968년 12월 12일 서울∼인천 구간의24km, 4차선이 개통되면서 부터 막이 올랐다는 기록이다.그리고 뒤이어 경부고속도로인 것이다.그러면 당연히 경부고속도로가 당시 대일청구권,베트남전쟁,서독,중동특수등 외적 변수요인이 없었다면 야당의 지적은 아주 현명한 지적이였음을 알 것 같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교통편은 이미 존재 하였습니다 일제가 대륙 침탈 목적으로 만들어 놓았던 경부선 철도였죠 그러므로이미 교통편이 있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 보다는 그당시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서울과 강원도를 잇는 고속도로를 말이죠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은 “실제 누워 있는 사람의 옷차림이나 체형 등은 김대중 당시 신민당 의원과는 다르다”면서 “일부에서는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김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무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야당은 다음의 5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1) 서울-부산에는 복선철도가 있는데, 중복투자로 수도권과 영남권 등 일부지역에 편향적 발전과 특혜를 부여한다는 지역편중의 우려였다. (2) 고속도로에 대한 예산편중이다. 수송수요가 늘어 도로의 건설은 필요하지만, 왜 일반도로를 증설하지 않고 고속도로에 예산을 집중하느냐의 지적이었다. (도로건설예산 131억원에 고속도로 70%, 일반도로 30%의 배분). (3) 1965.11∼1966.6까지 한국의 교통상황을 조사한 IBRD(세계개발은행)의 보고서는 철도중심의 수송체계를 도로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유료고속도로의 건설보다는 국도·지방도의 포장에 치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권고에 근거하여 야당이 우선순위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IBRD는 남북종단보다는 동서횡단도로를 권고했다. IBRD는 ① 서울-강릉, ② 포항-부산-순천-여수-광주, ③ 삼척-속초, ④ 대전-목포 등 4개 노선의 건설이 더 시급하다는 견해였다. (4) 관리감독기관장의 직급이 1급 2급으로 위계질서에 어긋난다는 하찮은 문제였고, (5) 법적 절차의 문제였다.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예산심의도 없었고 설계도 끝나기 전에 서울-오산 구간을 착공했다는 것이다(이 공사는 설계와 공사를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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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히로히토 사망 조문 사진에 대한 해석
민족배반자(친일파)의 전통을 물려 받은 자칭보수세력들이 아래의 사진을 가지고 마치,김대중 전대통령이 일왕에게 충성이라도 맹세한 것처럼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닌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박정희랑 똑같은 줄 아시나? 박정희는 당시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교사'신분이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본군에 자진 입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혈서로 천황폐하께 충성을 맹세했더랬지. 김대중 전대통령은 당시 일왕 히로히토가 사망하자 주한 일본대사관저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이것이 '친일행적'인가? 그렇다면 같은 시각,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가 조문을 했던 당시 노태우 정부 관료 수백명은 뭐라고 해야할까?
이에 김대중 전대통령은 일본으로 가지 않고 주한 일본대사관저에 가서 조문을 하게 된다. 그날이 히로히토가 사망한지 이틀뒤인 1989년 1월 9일 이었다.
경향신문의 1989년 1월9일자 2면에 아무런 관련기사 없이 (출처: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9/01/09/19890109KHM02.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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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속한 민주주의정부 수립, 전두환보안사령관과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한 신군부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주화 운동입니다 퇴진 및 계엄령 철폐등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발생했다 등의 조치를 내렸다. 공수부대 등의 계엄군을 동원하여 진압했다 닥치는 대로 살상·폭행하는 것을 목격한 광주시민들은 두려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고,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재현되지 못했던 부분 1.신군부의 5.17군사정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광주 시민들이 시위를 벌인 동기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2.공수부대원들이 시위 진압 도중 대검을 사용하는 장면을 누락했다. 심지어 19일~20일 진압 도중에 19세 여성이 대검에 가슴을 찔린 사건도 있었다. 3.공수부대원들이 4인 1조로 올라가 주변 빌딩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하는 장면이 빠졌다. 4.신군부는 시위대의 외곽진출을 막기위해 외곽도로를 봉쇄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화려한휴가에서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사건>>을 제외하면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에게 발포한 사건들 상당수가 누락되었다. 5.광주 시민이 단순히 한두 사람에게 지휘를 받은 식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되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광주 시민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토론을 통해 결정하였다. 자율적으로 방범 활동도 벌여 시내 중심의 금융가,상점가에서 도난 사건이 단 한건도 없었다. 광주학살사진 19금입니다 박정희와 차지철은 대규모인명살상을 모의하고 있다가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한다. 박정희에 의해 무고하게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명예회복은 뒷전으로 밀리고 순교자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김영삼의 짓이라고 믿었고 전두환 노태우는 광주항쟁을 김대중대통령에게 덮어 쒸우고 사형선고를 하죠 반면 전두환은 광주에서 5.18로 인명살상을 현실화하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려고 전두환우상화가 이뤄져왔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부마항쟁은 살인미수 그쳤지만 광주항쟁은 아무 방해없이 살인 범죄행위로 이어져 법의 심판을 받아 전직대통령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전두환 광주학살과 박정희 부산마산항쟁의 둘의 공통점은 어느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았고,시위대를 폭동이라고 부른것이죠 김영삼이 집권시절 광주학살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은 수감되었죠. 또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 12. 21)·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진압한 공로자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으며 그 자격을 박탈했죠 5,000억 원 비자금만들어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추징금 1672억원 중 달랑 300만원 납부 추징금 시효가 임박하면 압류 등이 들어올 것을 막기 위해 전두환 비자금 5천억 노태우 비자금 5천억 76년국가총예산이 4600억이었다 전두환말아먹은게5천억이면 전국민이 50년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는데 "DJ"인터넷에 허위사실유포한 지만원씨 법정 선다 ‘인터넷에 허위사실 DJ 모욕 ’ 지만원 기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114391&code=940301 지만원 "´노´ 묘역 인분투척 ´현대판 윤봉길 의사´"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26607&kind=menu_code&keys=3 문근영 빨지산 색깔론' 지만원 손배訴 패소 확정” http://www.mediapen.com/3/6542/view 지만원 동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0&ref=search&sort=wtime&clipid=18332040&search Type=0&svcid=&svctype=1&q=%EC%A7%80%EB%A7%8C%EC%9B%90&lu=v_search_22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5·18은 민중 반란, 4·3은 폭동” 진실화해위원장이 과거사 폄훼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 김구를 테러분자라고
각종 역사, 진실위원회 폐지 발표 = 역사말살 및 근현대사 왜곡 1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 폐지발표 2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폐지발표 3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폐지발표 4 친일 반민족 진상 규명 위원회 폐지발표 5 삼청 교육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6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 폐지발표 7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 진상규명 위원회 폐지발표 8 동학 농민혁명 참여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9 특수 임무 수행자 보상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10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폐지발표 11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위원회 폐지발표 12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13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지원 위원회 폐지발표
80년도에 언론이 어떻게 조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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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유일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 98년 중반까지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 허용 ▲ 건전·시장중심적 금융질서 확립을 위한 금융산업 구조조정 ▲ 외국인 주식 소유한도를 98년 2월까지 27% ㅡㅡ> 55%로 확대 -> 현재 주식시장에 외인들이 설치는 구조, 한때 SK가 소버린에게 넘어갈뻔 했슴.
▲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조치: M&A에 대한 규제 대폭 완화 ▲ 노동시장 유연화 : 정리해고 제한 완화, 파견근로제 도입 ▲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IMF 프로그램 지지 성명 발표 등이 포함됐다.
한나라당이 IMF와 맺은 국부유출 이면 합의서
우리 기업들 팔겠다고 IMF와 바보같은 계약서
▶김대중 정부 (5년집권시)
한류 문화산업 육성.......................(2004년 춘사영화제 공로상 수상) 디지탈 IT 지식정보화강국 육성........(각종지표 세계1~3강) BK21- NT.BT 미래과학기술 육성.........(빛과 그림자..황우석 파동의 후유증을 남김) 한국 경제의 선진화..........최초.최고.....(세계 100대 기업에 최초로 삼성.현대.엘지 입성시킴) 국가부도후 추락한 국민소득을 7,355 달러에서 12,646 달러로 상승시킴 세계 국가 경쟁력............역대최고...........(41위 에서 28위까지 급상승) 세계 과학기술 경쟁력.....역대최고..........(28위 에서 12위까지 급상승) 세계 4위 1200억 달러 외환보유............역대최고.....(국가부도 걱정없는 나라 만듬) 국가신용도평균 7단계 최대 10단계 상승...역대최고....(남북정상회담 이후..급상승) 연평균 땅값 상승률 -0.2%.............................................(박정희 정권 33.1%) 땅값상승 불로소득 -18조원........................................(노태우 정부 926조원) 기업의 설비투자율 10.6%................역대5위..........(노태우 정부 14.5%) 노동 소득 분배률 59.5%................역대2위.........(박정희 정권 43.7%) 2002년 말 실업률 3.1%.............................(박정희 정권 말 17.9%)
<역대 대통령 경제 성적표> 이승만 ''''12년집권 -15억$적자 67 -> 82 노태우 ''''''5년집권 -132억$적자 4,268 -> 7,811
역대 집권자별 실질 경제 성장률 (년 평균 %) ------------------------------------------------------------ 출처) http://kosis.nso.g o.kr/ 에서, 'KOSIS > 자료출처별 검색(국제통계) >
역대 정부 부동산 가격 상승 통계자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자료.건교부 ,지가 동향,한국감정원,전국 주요도시 지가 조사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비해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박정희시절은 미국이 역사상 가장 경제적 활황을 이루던 시기였고, 중동노동자들등 국민이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정부로 부터 취약해졌고 불균형지역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일임했는데 당시 물가를 3%로 잡았었다
국가부도낸 박정희을 근대화 아버지로 추앙 http://blog.daum.net/yahooook/10777381
국가신용도 평균 7단계 최대 10단계 상승.....1위..............(남북정상회담 이후..급상승)
세계 국가 경쟁력 역대 최고......................1위..............(41위 에서 28위 급상승)
세계 과학기술 경쟁력 역대 최고................1위..............(28위 에서 12위 급상승)
5년간 846억달러 무역 흑자......................1위..............(임기 5년 연속 흑자 최초 대통령)
건국 이후 최초 순채권국 만듬...................최초.............(2000년 2/4분기부터 순채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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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반 경상도 전국연대연합 원문보기▶ 글쓴이 : 난공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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