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이야기2017. 4. 24. 16:14

@김대중대통령에대해 비하하는 이유 


근현대사 라이벌

민주당   -   한나라당

김구      -   이승만

김대중   -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노무현   -   이명박



한나라당

 

 한민당 -> 자유당 -> 공화당 ->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이승만(친일청산단체해체,12년집권)-박정희(친일장교다까끼마사오,18년집권)-전두환(7년집권)-노태우-김영삼-이회창(부친이홍규일제시대황해도"검찰서기")-박근혜-이명박 


 


 민주당

독립운동가-한국독립당-민주국민당-민주당-신민당-평민당-민주당-국민회의-(구)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백범김구.안창호-이시영-신익희-정일형-장준하-김대중-노무현



 


한나라당이 권력을 놓친 지난10년을 뉴라이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한다


노무현대통령이 지난5년동안 당한일을 김대중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지금까지 당하고 있다고 보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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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놓은 돈이 많다

 

 

김대중대통령12억 중 순수재산은4억  박정희 최소1조원-최대5조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재산을 파헤치는 데는 보수세력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결코 무능하지 않다. 
검찰은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사돈의 팔촌까지의 재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현미경으로 논바닥의

이삭 찾듯, 참빗으로머릿속의 서캐를 속아내듯 샅샅이 훑어왔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27954&PAGE_CD=N0120

 

 

전두환 5,000억 원 비자금만들어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추징금 1672억원 중 달랑 300만원 납부 추징금 시효가 임박하면 압류 등이 들어올 것을 막기 위해 꼼수라고 하던데  전두환

비자금 5천억 노태우 비자금 5천억 76년국가총예산이 4600억이었다 전두환말아먹은게5천억이면 전국민이 50년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는데
그당시 5천억이면 지금 5조원정도 될것같습니다 둘이합쳐10조

 

 


*슬그머니 돌려받은 노벨상금2003-04-27기사 재산기부다 했는데 옛날기사입니다  

 

김대중의 아태재단과 기부의 내용

 - 아태재단 설립 후 재단 자체를 연세대에 통채로 기부! (재단 설립과 운영이 분리됨)

 - 연세대는 이 재단의 기부를 받아서 부동산에 도서관 건립(동교동 지하1층 지상5층)

 - 이 곳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와 같이 붙어 있지만 이 사저도 사후에는 연세대 소유가 됨

 - 간단히 말하면 기부 후 운영은 연세대에서 한다. 죽으면 살던 집도 기부된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closed/read?bbsId=D128&articleId=27100


아태평화재단(현재 ‘김대중 평화센터’) 소유 건물과 사료(1만6000점)를 연세대에 기증했고, 연세대 측은 2006년 11월 각종

전시시설을 보강한 뒤 ‘김대중 도서관’으로 재개관했다.

‘김대중컨벤션센터’.광주전시컨벤션센터’였던 이곳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거친 끝에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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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일부 한나라당 남북분열주의자들은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가위원들에게 돈을

뇌물로 제공하고 수상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러자 스웨덴정부는 즉각 발표했다....너희나라는 돈으로 수상이

가능한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불가능하다.


노벨 평화상은 아무나 받는 것인가. 아니다. 김대중은 14번이나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로 추천된 끝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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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박정희 1965년 한일국교정상회담 침략만행에 대한 사과가 빠진 한일협정 기본조약 
일본 청구권 자금8억달러로 경재발전 이루지만 군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등 개인패해 청구권포기 전관수역40마일에서

12마일로 수정으로 잃은 독도

 

 

독도 념겨준 박정희의 독도밀약 내용  1965년

.

- 독도 밀약 내용 -

1. 독도영유권문제는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앞으로 체결될 ‘한일기본조약’에 그 문제를 포함시키지 말 것.

(이 불포함 규정은 당시 한일국교수립과정에서 이행되었다. 만일 ‘한일기본조약’에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이 명기되면,

일본정부는 독도를 영토분쟁으로 끌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간파한 일본정부는 다섯 달 뒤에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위의 불포함 규정을 관철시켰고, 그에 따라 ‘한일기본조약’에는 독도영유권문제가 명기되지 않았다.)

2. 한일 두 나라는 독도를 각기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의 영유권주장에

반론하는 경우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

(이 규정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을 부정해도 한국정부는 외교대응을 할 수 없다.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 독도침탈책동에 ‘조용한 외교’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위의 규정이 한국정부의 외교대응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3. 앞으로 어업구역을 정할 때, 한일 두 나라가 독도를 서로 자국영토로 인정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해역을 ‘한일공동수역’으로 정할 것.

(이 규정은 한일밀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33년이 지난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부가 제2차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행되었다. 33년의 시차는 일본정부가 독도침탈책동을 장기전략에 따라 집요하게 추진해오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 어업협정에서 일본정부는 울릉도에 딸려있는 섬인 독도를 울릉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떼어내어

‘한일공동관리수역’으로 끌어내었다. 그 어업협정에 따르면, 원래 독도는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해야 하는

섬인데, 한국정부가 임시로 관리하도록 일본정부가 양해한 섬으로 된다.)

4. 현재 한국이 독도를 점거한 현상을 유지하지만, 한국은 그 섬에서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시설을 증축하거나 신축하지 말 것.

(한일밀약은 독도에 대한 한국정부의 실효적 지배를 ‘점거’라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독도는 한국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찰이 ‘점거’한 것이다. 경찰의 임무는 치안유지이고, 군대의 임무는 영토수호이다.

수호해야 할 영토인 독도에 해양경찰이 아니라 군대를 주둔시켜야 마땅한 데도 한국정부가 군병력을 독도에 보내지

못하는 까닭은, 위의 규정이 한국군의 독도주둔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5. 한일 양국정부는 위의 조항을 준수할 것.

(한일 양국정부가 이 밀약을 준수하면, 독도영유권은 일본정부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다.)

독도영유권은 한일 두 나라가 나눠가질 수 없는 것인데도, 한일밀약은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도 인정하고 일본의

독도영유권도 인정하였다. 독도영유권을 한일 두 나라가 서로 인정한다는 규정은 언뜻 들으면 형용모순인 것 같지만,

국제법적으로는 형용모순이 아니다. 그 규정은 독도를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영유권 미정지’

로 법적 지위를 바꿔놓은 것이다. 미국정부가 독도를 독도(Dokdo)나 다께시마(Takeshima)로 표기하지 않고 리앙꾸르

롹스로 표기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독도를 ‘영유권 미정지’로 규정한 한일밀약을 따르는 것이다.

비록 한국의 국내법이 독도영유권을 확정하였어도 국제법으로는 미정되었다는 말은,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이

국제관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독도영유권이 국내법적으로만 유효하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한일밀약에 따르면, 독도는 이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가 아니라, 영유권을 확정하지 못한 무국적

섬이다. 그러므로 한일밀약이 남아있는 한, 국무총리가 독도에 가서 입도기념사진을 찍고 한국군이 독도 앞바다에서

독도수호훈련을 실시하면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독도는 이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가 아니다.

어느 나라의 정부가 무국적 섬을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권침해가 아니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한일밀약에 의거하여

독도를 자국영토인 다께시마라고 주장하거나, 더 나아가 그 섬에 기습상륙한 일본자위대 병력이 울릉도경찰서 소속

해양경찰 37명을 간단하게 무장해제하고 섬을 무력으로 점령해도, 한국정부는 저들의 독도강점을 국제법적으로 영토침범

또는 주권침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박정희는 사또 에이사꾸의 간계를 알면서도 밀약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독도영유권을

포기하였고, 그 섬을 강탈하려는 일본정부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뉴스 출처: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684


자료 하나 더...

월간중앙은 2007.06 19일 발매된 창간 39주년 기념 4월호에서 "한.일 협정 체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우노 소스케 자민당 의원이 독도밀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독도밀약은 한.일 협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어 졌다.월간중앙이 한국과 일본의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근거로 추적한 독도밀약은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4개 부속조항으로 구성됐다.

부속조항은

▶독도는 앞으로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 수역으로 한다.
▶현재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간다 등의 4개 항이다.

월간중앙은 "그 독도밀약은 합의 다음날 (왜병출신 쿠테타괴수) 박정희의 재가를 받았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노 의원은

그간 비밀 유지를 위해 이용하던 용산 미군기지에서 일본의 고노 이치로 건설장관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으며, 고노는

이를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사토 총리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김종필 전 총리의 친형 김종락 당시 한일은행 전무였다. 당시 김 전 총리는 한.일

협정 굴욕협상 반대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의 반 타의 반' 외유를 떠난 상태였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도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로 간주한다'는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며 "박정희 군사정부는 독도밀약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언명과 함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 서울 특파원으로 독도밀약을 위한 정일권-고노 연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시마모토 겐로(80)는

"우노 소스케 의원이 박건석 회장의 자택에서 정일권 총리에게 독도밀약 문건을 건네는 자리에 나와 김종락.문덕주

(당시 외무부 차관) 등 세 사람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월간중앙은 "한.일 두 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 독도에 새 접안시설을 건설함으로써 약속을 깬 것 외에는 거의 밀약을

준수해 왔다"고 밝혔다.

 

 

 

 

(밑에 내용은 백과사전 김영삼 부정적평가의 일부내용입니다)

 

 

김영삼 정권이 1997년 10월 일본측에서 제시한 잠정공동수역안(잠정조치수역은 독도 중간수역)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공동수역이 된 것에 대해 박정희 
정권의 독도밀약뿐만 아니라 이또한 독도영유권 훼손이라고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한일어업협정은 국민정부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였다1995년 11월 당시 대통령 김영삼은 장쩌민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독도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간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그야말로 ‘감정 그대로의 표출’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이 19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의 ‘일방적 종료’를 통보해온 것은 그로부터 약 2년 2개월 후인 1998년

1월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당국자는 
일본의 어업협정 파기가 치밀하게 계획된 수순이며, YS발언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단언했다. ‘버르장머리’ 발언

자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한·일간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약 1년반 뒤, 일본이 이른바 ‘직선영해기선’을 적용, 한국 어선들을

나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에 근거해 근해의 작은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 영해기선을 새롭게

설정하고, 1997년 1월1일을 기해 시행에 들어갔다.
 1997년 5월 당시 유종하 외무부 장관도 미국방문 길에 수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어업문제에 대한 일본의 요구가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있다”
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일간 신어업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은 이런 상황에서 시작됐다. 새 유엔해양법조약에 따른

양국간 배타적경제수역 경계획정 문제가 
맞물려 기본적으로 복잡한 구조인데다, 한국으로서는 나포된 선박과 선원 처리에 있어서 ‘명분’까지 확보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칼자루를 쥔 쪽은 명백히 
일본이었고, 한국은 “한일간 어업문제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일간 동시에 판을 깰 경우 우리 어민들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YS의 양보로 한국은 종래의 기본입장을 수정하여 1997년

3월 6일부터는 경계획정 문제와 어업문제를 
분리 협상하자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YS정권은 이어서 같은 해 1997년 10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6차 한일

어업실무자 회의에서 동해의 독도를 포함한 
수역에 잠정조치수역을 설정하는 안에도 결국 동의하였다

 

 

 

 

 


한국은 김영삼정권말기인 97년 10월 당초의 한일간의 EEZ경계선확정이란 방침에서 후퇴하여 시급한 어업문제의

해결을위하여 어업협상을 EEZ 경계획정 문제와 

분리하여 EEZ 경계획정시까지 양국의 연안수역을 배타적경제수역으로 하고, 가운데에 중간(잠정)수역을 설정하는

잠정적성격의 어업협정 체결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김대중정권에 이르러 잠정수역의 경계선을 상대국 해안 35해리라는 데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김영삼정권말기인 97년 10월 당초의 한일간의 EEZ경계선확정이란 방침에서 후퇴하여 시급한 어업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어업협상을 EEZ 경계획정 문제와 

분리하여 EEZ 경계획정시까지 양국의 연안수역을 배타적경제수역으로 하고, 가운데에 중간(잠정)수역을 설정하는

잠정적 성격의 어업협정 체결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김대중정권에 이르러 잠정수역의 경계선을 상대국 해안 35해리라는 데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어업협정 체결할 당시의 한국의 경제적인 상황을 이용하려했던 같습니다. 그리하여 어업협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지 않자 한국이 IMF 구제금융하에 

있는 1997-98년 일방적으로 어업협정을 파기함으로써 강력하게 대응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박정희의 독도밀약때문에 한일어업협정을 했고 한일어업협정은 김대중 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였다

 


 김대중 때 어업협정은 이미 김영삼 때 하시모토 총리와 제주에서 독도 영유권과 어업협정을 분리하기로 했고 

울릉도 기점을 하기로 합의까지 한 것을 이어 받아 약속 지킨거다.


더욱이 김대중 정권 때 맺은 신어업협정은 3년 의무기간이 노무현 때 끝났다. 

지금은 자동연장 상태다. 즉 이명박이 일방 파기 통보만 하면 파기된다, 


 

 





@ - 요약 - 
한국과 일본은 어업협정을 통해 200해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고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외교협상을 벌이던중.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먼저 독도기점 eez는 포기하겠다는 
말씀을 정상회담에서 하시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외교는 장사다. 그런데 그는 장사의 그 원칙을 어긴 것이다. 
물론 그의 발언은 박정희가 맺은 독도밀약 협정서에서 한발도 나아가거나 
물러섬도 없는 내용이다. 신어업협정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단 김대중 정부는 일본과의 eez 협정을 맺으려 했으나 양측이.
의견이 맞지않아.협상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중단된 상태다.
그래서 eez 협상의 대상이던 독도12해리 영해밖의 공해상을 중간수역으로 명하고 
우린 어선들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안에서 어로활동을 계속하도록 한 것이다.즉 한일간에는 eez 경제선이 아직도

미정이라는 이야기다

또 하나 신어업협정은 그 시효가 
지나도 아주 오래전에 지난협정이다. 2001년까지가 협정의 시효이다. 
거기엔 조건이 있는데 어느 한쪽이 파기선언하면 그날부터 
이협정은 무효가 가능하다...그런데 왜 한국정부는 파기를 안할까? 
생각해보라 왜 안할까?  첫번째 이유는 동해 어민들의 반대다. 
이것이 깨지면 EEZ 협상을 다시 할때까지는.
일본쪽 EEZ 구역에서의 어로가 불가능하다. 
협정을 깨고 싶다면 동해 어민들부터 설득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독도는 지금도 우리의 12해리 영해가 적용되는 한국의 영토다. 
그 12해리안에 일본의 어선이 들어온다면 우린 나포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선 격침도 가능하다

http://cafe.daum.net/chaeunnim/1ccR/220?docid=zTss|1ccR|220|20060419184401&q=%B1%E8%BF%B5%BB%

EF%20%B5%B6%B5%B5%20eez&srchid=CCBzTss|1ccR|220|20060419184401



前 해수부장관 "新한일어업협정 수정, 실효성 없어"


신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던 1998년 당시 해수부 항만정책국장을 지낸 최 전 장관은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협상을 다시 한다고 해도 일본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또 다른 마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 한일어업협정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5년 간 진행되다 김대중 정부 들어 마무리 된 것"으로 "독도 영유권을

훼손했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최낙정 전 장관은 또, 독도가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한일중간수역에 놓인 것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어업협정은 영토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최 전 장관은 "신 한일어업협정 조문에서 이 협정은 영유권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헌법재판소나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어업협정은 어업 문제에만 국한됨을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98017


 


 

박정희는 정권연장을 위해 군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등 개인패해 청구권포기 한일협정과 도독밀약을 한다 독도밀약때문에 한일어업협정을 했고 한일어업협정은 김대중 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였고 IMF경제상황을 일본이용한 것이다 이 협정의 시효는 2001년까지이면 어느한쪽이 파기선언하면 무효가 가능하다



 


 

박정희는 정권유지를 위해 한일협정을 한다

 

박정희 1965년 한일국교정상회담 침략만행에 대한 사과가 빠진 한일협정 기본조약 
일본 청구권 자금8억달러로 경재발전 이루지만 군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등 개인패해 청구권포기 전관수역40마일에서

 12마일로 수정으로 잃은 독도

 

 


 

 

 





 

 

 

 

박정희는 정권유지를 위해 한일협정을 한다
경제개발이 급한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와 최고위 관계자는 정권이냐 한일문제이냐중에  한일문제보다 정권유지를 위해 

 일본에 피해청구권을 포기한 
한일협정을 하고 어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선거전에 양보안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4893835

 

박정희 - 친일만주군장교 조선의용군 소멸 토벌,5.16쿠데타,언론장악,부산마산항쟁,하나회,지역감정조장,선거조작,대북

밀사를 통해 북한에 돈을 갖다주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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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지원

 

 

대북지원 규모 관련 설명자료

□ 최근 국내 일각의 ‘8년간 8조원 대북지원’ 주장은 사실과 다름.

o 8조원이라는 금액은 인도적 대북지원 이외에 일반적으로 대북지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정상적인 상거래행위, 경수로분담금,

개성·금강산사업 투자액을 모두 포함하여 과대 계상한 것임.

   * 8조원 지원 주장내역 : △대북지원 4조 5,885억원 △경수로분담금 2조 1,690억원 △대가지불 약 9,800억원(9억 8,181.5만 달러)

△개성·금강산 투자액 5,990억원

o 실제 국민의 정부 이후 지난 8년간 대북지원액은 2조 3,003억원이며, 이 또한 모두 현물로 지원되었으며 현금지원은 전혀 없었음.

□ 대북지원액에 국내 농가 지원을 위한 양곡관리특별회계 지출
  (2조 2,882억원)을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o 남북간 식량차관 계약시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고, 국제시장 쌀 가격(톤당 330$)이 국내산(톤당 174만원, 1,783$)의

1/5수준으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해외구매가 유리하나, 국내산 잉여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 △국내쌀 과잉 재고 해소 △국내쌀 공급과잉으로 인한 국내쌀값 하락 방지 △매년 보관 관리비용 지출 부담 절감 등 국내 농가

지원 차원에서 농민단체 및 농정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임.

  - 따라서, 외국산과 국내산 가격 차이에 따른 양특회계 지원분은 대북지원비용이 아니며 국내농가 지원 비용임.


□ 경수로 분담금 2조 1,690억원은 국제기구에 제공한 비용으로 대북지원이 아님.

o 경수로 분담금은 ‘94년 10월 제네바합의 이전 김영삼 대통령이 약속(’94.9)한 사항으로, 국민정부·참여정부는 이러한 약속에

따라 경수로 비용을 집행하였음.

o 경수로 분담금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추진한 사업비용(국제기구인 KEDO에 지불)으로 북한에 지급된

것이 아니며, 상당 부분의 경수로사업비는 한전 등 우리 업체에게 지급되었음.

□ 금강산 관광대가 등 9억 8,181만불(약 9,800억원)은 정상적 경제행위에 따른 대가지불로서 대북지원과 성격이 다름.

o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사업 등은 민간기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자신의 이윤창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경협사업으로

이에 따라 이루어진 대가지불은 정상적 상거래 행위로 통상적 대북지원이 아님.

  - 관광 대가의 경우, 관광에 따른 입장료와 관리비용으로서 중국 등 외국인의 경우에도 북한 관광시 요금을 지급하고 있음.

□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사업 투자액 5,990억원도 대북지원과 무관함.

o 동 투자액은 해당지구 기반시설 건설 및 공장 등 건물건축, 각종 설비투자 등에 소요된 비용으로 북한에게 지원한 것이 아님.

  * 개성공단 투자 : 입주기업 공장건축 등 투자금, 부지조성공사, 기반시설공사, 전력·통신 구축, 편의점 등 기타 시설 투자금

  * 금강산 관광사업 투자 : 온정각·부두시설·해상호텔 등 현대아산 직접투자, 골프장 등 36개 협력업체 시설 투자금
□ 결론적으로 8조원 지원 주장은 사실이 아님.

o 국민의 정부 이후 대북지원 규모는, 정부 차원에서 쌀·비료 등 현물로 1조 7,005억원, 민간차원에서 현물로 5,998억원 등

총 2조 3,003억원 상당의 현물임.

  ※ 국제사회(한국 제외)는 ’95~’05년간 23억 6,133만$를 북한에 지원
    
     - 식량지원의 경우 ’95년 이후 우리가 245만톤을 지원, 미국은 205만톤, 일본은 약 100만톤을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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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및 금강산 사업은 89년 노태우 정권때 현대 고 정주영 회장이 북한과 직접 체결한 사업이고 그 당시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 찬성 승인한 사업입니다
개성관광 사업권,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 개성공단 토지임차료등
이것을 퍼주기라고 우기는 것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토지를 구입해서 공장을 세우면서 중국에 내는 돈이 전부

중국에 퍼주는것이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태우정권 때 노태우가 구 소련(러시아)의 고르바초프를 제주도에서 딱 30분간 만나고 30억 달러를 소련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 때 당신들은 소련에 퍼 준다고 욕을 했는가?

 

 


연평균 대북지원 실적은 김대중 정부 때보다 문민 정부인 김영삼의 재임 때 더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평균 실적을 비교하면 5년간 지속적으로 대북지원이 이뤄졌던 국민의 정부때는 연평균 5천442만달러였던 반면 집권

3년째인 1995년 6월부터 지원을 시작한
문민 정부때는 연평균 9천815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경수로 건설비용 46억달러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36억달러를 부담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미국의

경수로 공사 중단 요구에 따라 천문학적인
액수를 날리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대화에는 참여하지 못한채 비용만 부담한 ‘들러리’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김영삼

백과사전내용 부정적평가내용 )

 

연평균 대북 정부지원 문민정부(김영삼 신한국당)때 더 많아 김영삼 대북지원: 쌀 15만톤+ 경수로:4조 3천억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310/200310050024.html




대북송금 ;  김대중정부 1조5000억원, 노무현정부 1조6000억원,  현 이명박정부 임기절반인
지난6월까지 8600억원, 이 추세로가면 이명박정부가 대북송금 사상최대치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합니다.
이명박 핵개발자금 지원해준 7억5천만 역대 정권중 가장 많다고 합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2&type=all&articleid=2010100523404318334&newssetid=1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310/200310050024.html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야욕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1994년 보수언론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보도합니다

1971년 9월 20일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개최되었다.
100분 토론때 시민논객이 한나라당 공성진의원에게 박정희 시절 대북 밀사 예로 들면서
"냉전시절에도 북한에 밀사를 보내 국민을 안심시켰다' 라고 말하니까
공성진의원이 "그 밀사가 돈 갔다줬다" 대답했다

미국 CIA 1994년 의회 보고서에는 "북한은 1992년 이전에 핵개발을 끝냈다"라고 돼있다.
황 전 비서는 북핵문제와 관련해 "1996년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지하에서 핵실험을 다 할 정도로 이미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가 상당수 만들어져 있다.대답했다

 

 

▶서독은 20년 동안 동독에 평균 32억불을 매년 지원했다.우리는 13년동인 매년 1억 5000만 불을 북에 주었다.이것은

1인당 연간 5000원을 모아 북한을 도운 셈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남북의 냉전 제체를 종식시키고 화해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한반도 긴장이 일거에 완화되어 지난 10년

동안 안보 불안 없이 살아온 것이다.
남북 대치로 엄청난 비용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에 비하면 '퍼 주기' 논란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북핵이 타결되어 대북 전력지원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져야할 부담은 최소 6.5조에서 최대 11조 사이로 예상되는데 ,

한국 리스크 감소 국가신용등급 향상으로 인한 왜채 이자 경감 등으로 우리가 입게될 경제적 이득은 120조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퍼주기’도 안 되지만, ‘굶겨 죽이기’도 안 된다는 점을 서로 인정했으면 한다.
현재 북한에 굶주리는 영유아들이 250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남는 재고 쌀이 150만 톤이나 있어 농민들이 떨어진

 쌀값 때문에 이만 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http://www.ekgib.com/news/articleView.html?idxno=442409

 

 

 

▶'햇볕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겨레신문 일부 내용
노무현 정권 때 비서관 박선원의 증언이 놀랍다. 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대하면서 핵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영변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무기 2~3개를 만들 
수 있는 핵연료봉 수천개를 모두 남쪽에 팔기로 했었단다. 그런데 현 정권은 제시 가격 몇백억원이 국제시세의 두배라며

 이를 거절했다 한다. 그 뒤 사실상 
북한의 붕괴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비치자 북은 아예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시작해 지금 몇 개의 핵폭탄을 만들었다는 거다.

재래식 무기로는 도저히 남쪽의 적
수가 되지 못함을 잘 아는 북쪽에게 마지막 선택지는 핵무기일 수밖에 없다. 이번 연평도 사태를 통해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햇볕정책은 남쪽의 ‘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주식이며 부동산 많이 가진 기득권층도 분명히 알게 되었지 싶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54605.html

 

 

 

 





 

 

 

 

 

연평균 대북 정부지원 문민정부(김영삼 신한국당)때 더 많아 김영삼 대북지원: 쌀 15만톤+ 경수로:4조 3천억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310/200310050024.html

 

대북지원 : 김대중1조5천억  노무현2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19/2008091900024.html

 

대북송금 ;김영삼경수로4조3천억(36억 달러)김대중정부 1조5000억원, 노무현정부 1조6000억원,  현 이명박정부 임기절반인 
지난6월까지 8600억원, 이 추세로가면 이명박정부가 대북송금 사상최대치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합니다. 
이명박 핵개발자금 지원해준 7억5천만 역대 정권중 가장 많다고 합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2&type=all&articleid=2010100523404318334&newssetid=1

 

 

대북지원금 
김대중1조5천억+노무현1조6천~2조 = 3조1천억원~3조5천억
박정희(대북 밀사를 통해 북한에 돈을 갖다주고)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4조 3천억(경수로) +

이명박 2010년6월까지8600억원 = 5조1천600억원이상

 

 

 

 

▶국방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시절의 세계가 혀를 내 두룰 정도의 놀랄 만한 명품 무기들 을 수도 없이 개발 해 냈다는 것

1)현무 크루즈 미사일 개발 :세계에서 3개국밖에없는 사거리 500키로 1000키로1500키로 완료 배치 탄두 500키로그램,,,,

우리가 지금 중국 전 내륙을 강타할수 있는 3천5백키로 현무 크르즈미사일 을 개발 중 김대중 노무현의 영원히 빛날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죠(일본은 아직 개발 못했음),,,,명중 정확도 1~2메타(미국 것 보다 명중률에서 앞서고),,,,마하1,5~1,7

속도로 아주 낮게 물위를 스치듯 지나고 높은 산을 넘고 모든 물체를 요리저리 피하고 나아감 (일본 전지역 강타

일본과중국이 개발 하려고 안간힘씀)


2)kdx-2개발 : 일명 최 첨단 구축함 인데요 적의 공격 목표를 1000개 감시 하고 있다가 일순간에 적의 목표를 스위치

하나로 300개 동시 강타 할수 있고요 적 의 항공기요격 시스템 하푼 미사일과현무 크루즈 미사일 2백90발을 기본으로

장착 그리고 어뢰32발 장착,,,,,등등 보안상 더는 말 할수없음 아무튼 김대중 노무현의 위대한 업적 임


3) 백상어 ,청상어어뢰 개발:잠수함에서 적의 잠수함이나 물위의 배를 공격 (파괴력은 세게최고 로 1메타이상 철갑을 관통,

특징은 물위를 날아서 적의잠수함이나 배가 도망갈 시간을 안줌 명중률 또한 세계최고이고세계에서 유일 무일 한 무기로써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 의 치적임


4)말썽 많은 k9자주포 썬더와 수륙 양용 장갑차 개발:곡사포 155를 개량 한것이고 자동으로 분당 6발 발사 자동으로 탄을

연발 장착 함 적의 표적을 자동으로 계산 함 사거리는 43키로 살상 반경 100미터 세계에서 곡사포중 가장 멀리나감 그다음

독일 에서 개발 했음 독일 곡사포는 37키로 전세계에서 한국과 우리나라밖에 없음
수륙 양용은 수심 5~6미터 깊이에서도 도하가 가능 한데 문제는 포와 포신이 물에 잠겨도 도하가능하고 발사가 가능한

세계 유일 한 무기로 김대중 노무현의 치적임


5)xk2흙표 전차 개발 :세계 3세대 전차중 가장 뛰어남 모든 움직이는 적의 표적을 놓치지 않고 자동으로 포신이 따라가며

 달리면서 발사경사 65도 가뿐히 주행 또한 적의 유도탄 교란 장치가 있으며 저공 비행기는 한발에 아작 낼수 있는 자동

감시체계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의 업적 임


6)독도수송함함 개발 : 헬기 6~7대가 동시에 뜨고 내릴수있음 ,군병력 5백영,차량100,전차30,야포,기타,등등 동시에 싣고

다님 중국과 소련 일본 프랑스 도 아직없음 오직 미국만 있음 그다음으로 우리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 업적


7)고등 훈련 경 공격기 개발 T50: 마하 1.5 속력 세계 유일 위급시 미사일 밎 기타 장치 가능 하며 공격용 비행기로도

활용미국 마틴사와 협력했음


8)k-11영상 소총 개발 세계 유일 :적 표적 자동 계산 ,등뒤또는 적 표적 위나 앞에 뚫고 들어가 자동 폭발 (지연 폭발 )

수류탄 처럼 적의 상황을 보면서 발사할수있음 이또한 김대중 노무현 업적 이다,,,,,이명박 정권에서 발표함

역대 대통령 중에 이 두분이 가장 한국의 국방을 튼튼 히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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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김대중 6·25전쟁의 와중에서는 해상방위대 전라남도지구 부대장  해군목표경비 부사령과 겸 위수사령관 재직

 (정식군인이 아니고 해상방위대 민병대)


6.25전쟁때 공산군에 붙잡혔다가 총살 직전에 목표교도소를 탈출했고


박정희는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조선의용군토벌(110여회참여) 하다가 국내에 들어와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근무하면서 군내 남로당 당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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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계명

그 당시 창시계명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할머니들중에게 물어보세요 창시계명했는지 안했는지



 

친일청산은 대한민국독립되었을때 처음 했지만 이승만이 친일청산단체를 해산시켜 실패하고 박정희 전두화 노태우 김영삼도

하지 않은 친일청산작업을 김대중대통령이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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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어록 왜곡 보도들

 

 

조중동은 김대중의 발언을 왜곡하지 마라!
http://www.djroad.com/bbs/sub_zboard.php?id=djboard1&no=6842


MB정권 조중동, 이번엔    DJ 죽이기   인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6171&PAGE_CD=N0120

 

노무현 2007 신년연설 그리고 조중동
http://qtv.freechal.com/Viewer/QTVOutViewer.asp?docid=2181065&srchcp=N&playtimePos=&q=노무현%20조중동%20왜곡#container


대통령 노무현을 그토록 괴롭혔던 조중동 왜곡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board_id=ht_society%3A001016&cline=194&cline=180&uid=71520

 

 

 

 

김대중 정권 때 부동산성장을 과열로 왜곡보도했던 조중동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95692


조중동이 감춘 고 노무현 대통령님 영국여왕 초청 방문 사진 
http://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016#

 

조중동 틈만 나면 왜곡 과장, 날만 새면 파문, 파장 
http://nozzang.seoprise.com/board/view.php?table=media&uid=475

 

 

김대중,노무현이 이런 말을 했을경우 조중동은 1면에 틀림없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http://kr.blog.yahoo.com/csesdh/1369385

 

 

 

 

@전두환 언론 우상화

 
전두환 언론우상화
2007년 6월 9일 방송된 KBS <미디어 포커스>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내용
언론사 통폐합하여 신격화했다
전두환 장녀결혼 방송 2시간30분분량
경향신문 전두환 새역사창조자로 기사에서 신격화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으로 묘사 신격화 1년당위로 방영
kbs뉴스20분간 전두환퇴임 전두환찬양
MBC전두환 위로파티연예인들 큰절 전두환51회 생일축하방영
언론에 보도지침보내고 
언론사에서 제일중요한일 드라마나 재미있는 방송 편집해서 전두환에게 보내는 것 
http://cafe.daum.net/kyongkim/FQ14/3200?docid=cY0N|FQ14|3200|20101026211054&q=%C0%FC%B5%CE%C8%

 AF51%C8%B8%20%BB%FD%C0%CF%C3%E0%C7%CF&srchid=CCBcY0N|FQ14|3200|20101026211054

 
 
 
 

 
 
 
대구공고, 전두환 만수무강 큰절 기원하고  강연 수익’으로 벌어들인 300만원벌어 1672억 중 300만원 납부
 
전두환 (일해)공원 68억원들여 일해공원은 경상남도 도비 20억원을 포함, 총 68억원이 건립에 투입되었으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황강 주변 5만 3724m2 부지에 준공하고
합천 일해공원 전두환 친필 표지석 논란 6500만원 혈세 들여 설치한다고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jeolla/view.html?cateid=100009&newsid=20081229175706770&p=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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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먼저, 대통령이 북한의 눈치때문에 축구나 보러갔다입니다.

일단 타국 정상과의 약속으로 주최국의 수장으로써 당연히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한일정상회담도 바로 있었구요.  

우리가 손님을 부른 자리이고 남북관계에 의심이 많던 상황에 오히려 참석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게 보았겠죠. 당연히 가는 자리였습니다.

두번째, 왜 이렇게 낮은 보상금을 유가족에 주었는가?

김대중정부시절의 연평해전은 두번이 있었고 첫번째는 피해가 없었고 

두번째인 2002년에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국회회의록에 나온 보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 □서해교전 전사자․전상자 보상내역 
<전사자> ○전사자(6명)에게는 개인별 총 4억 4100~4억 4700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유족에게 매월 68만 6000~82만 1000원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군인사망보상금(3100~3700 만 원), 보훈처장위로금(1000만 원), 
국민성금(4억 원) 

<전상자> ○전상자(4명)에게는 개인별 총 4200~1억 5400 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부상자에게 매월 21만 7000~80만 8000원 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장애보상금(500~700만 원), 보훈처장위문금(300만 원), 
국민성금(3400~1억 4400 만 원) " 


정부가 지급한 전사자에 대한 보상금은 3천만원인데 이 근거는 박정희때 만들어진 법령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사자에게 일인당 지급한 금액의 나머지 4억원은 성금으로 들어간 점에 지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박정희가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많은 보상금이 지급될 것을 염려하여 만든 헌법의 이중배상금지때문입니다. 

그래서 편법인 국민의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된 것입니다.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쩔수 없었던 것이죠.

 

만약 보상금형식이 되면 소급적용되면서 아마 국가예산이 엄청나게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성금형식으로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은 나중에 법령을  노무현정권때 바뀝니다. 

그래서 천암함과 이번 연평도의 북한의 만행의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전사자에게는 훈장조차 없었다?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에게 1명에게는 충무공훈장, 그리고 나머지 장병에게는 화랑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이것도 조중동의 농간이죠.


그럼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국군전사자에게 어떠한 처우를 했는지 보시죠.

http://gall.dcinside.com/list.php?id=military&no=729538&page=1&bbs=


96년 강릉침투 (김영삼 정부) : 부상자 자비부담 치료. 승진심사 탈락으로 당시 부상자 대부분 전역처리. 

99년 1차 연평해전 (김대중 정부) : 승리. 사망자 없음

02년 2차 연평해전 (김대중 정부) : 승리.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 전사자에 대한 법령이 없었음. 1계급

 

특진 및 충무무공훈장, 보상금 약 4억5천(성금 포함)

04년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 국인연금법 개정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2억원의

 

사망보상금을 받을수 있도록 개정. 지금 천안함 침몰 사망자도 이 법에 의해 보상금 받는 걸로 알고있음.).

 

참고로 연평해전 사망자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연금액 높혀받음.

10년 천안함 침몰 (이명박 정부) : 04년 개정안으로 전사자 처리. 1계급 특진.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보다 격이 낮음) 보상금 약 5억(성금 포함)



네번째, 연평해전의 관련 장교들은 나중에 강제제대시켰다?

연평해전당시 장교가 후에 제대가 되었다고 나온 것은 담당 사령관이 자신이 그러한 피해를 당했다고

 

조선일보 와
의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시각은 그사람이 해군총장을

 

노렸으나 다른이가 되자 
일부러 그랬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무현 정권당시 노통이 직접 부상치료후 복귀한 장교에게 전화로 격려했다는 점을 통해

 

관련장교들에게 피해를 줄 이유가 없고 정권차원에서 오히려 그들을 정권의 안보대처에
  좋은 선례로

 

남길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부러 정권에서 제대시킬 이유는 없었습니다.

 

#해고된 박정선제독 조선일보와 인터뷰(조중동은 믿지 못할 언론)  

 

조.중.동은 과연 언론인가?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406596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A4%91%EB%8F%99

 

조선일보에서 한명숙  5만달러 받았다고 허위사실유포

 

 

방상훈(조선일보 사장)
일제 식민지 시대때부터 역사왜곡 언론왜곡,가장 대표적 민족반역 친일신문.방상훈의 부인도

 

민족반역자(친일파)윤치호 손녀.끼리끼리 결혼.조선일보는 원래는 민족지였으나 민족지 조선일보가

 

일제에의해 폐간된후 민족반역자 친일파 방응모가 일제의 도움으로 조선일보를만듦.
 
김학준(동아일보 사장)
조상 민족반역자 고려대학교창립자 - 독립운동가 애국자를 가장한 "김성수"의 후손임.
민족신문이라고 지금까지 떠벌리고 다님.나라팔고 민족팔면 민족신문인가 봄.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만든 신문이었으나 일장기말소사건을
계기로 일제의 억압과강압에 의해 폐간된후.일제협력자 김성수가 다시 개간함.민족반역신문
 
홍석현(중앙일보사장)
일제시대 경주지법 판사를 지낸 친일파 홍진기,친일인명사전에도 등록되어있는 악질친일파,

 해방후친일에서 친미로 변신,대한민국 역사상 42세로 최연소 장관을 지냄,홍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력히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진기 전 법무부장관은 4·19 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특사로 풀려났다.

 검찰, 홍석현씨 소환통보 이 더럽고 역겨운 친일파신문들이다

 
언론이 어떻게 조작되나
http://pann.nate.com/video/213094933


다섯번째, 김대중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김대중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고 월드컵결승경기로 방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도 이점이 많이 의아했는데 찾아보니 이런 관례가 있더군요.

서해교전 영결식은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주관하는 사람보다 높은 계급의 군인들은 참석안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강릉 무장공비때는 육군참모총장주관이라 육군총장만 참석한 것처럼요. 

 

여섯번째, 김대중이 바뀐 교전수칙으로 인해 희생이 컸다??

교전수칙은 97년 유엔사를 통해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99년 1차연평해전에서 승리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이구요.

그것이 2차연평해전, 즉 서해교전후 희생이 생기면서 변경되게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맘대로 교전수칙을 바꿀수 없습니다. 우리한테 그런 권한도 없죠.


저는 김대중정부가 과도하게 제2연평해전으로 욕을 먹는 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비추어 비교해보면 확실히 대우를 해주고 좋은 선례를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정권교체 6개월전에 터지고 보상금을 지급했고 다른 행사를 할 시기가 없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욕먹는 것은 조장되었다는 느낌을 버릴수 없네요.

흔히 가스통할배들로 불리는 고엽제피해용사들에 대한 지원도 과거 정부에서는 생각도  못하던

 것을 시작한 것은 김대중정권이고 또한 처음으로 6.25전사자유골발굴단을 만든 것도 김대중

 정권입니다. 빨갱이라고 불리는 김대중이 빨갱이를 죽인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고 제대로

안장하는업을 시작한 것이죠.

그러한 점은 절대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연평해전을 통해 김대중정부를 욕하는 것이 많은 것은

우리가 언론의 농간에 의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가를 적나라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imf로 인해서 군 전력보강계획이 수포로 돌아갈려고 할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실행했습니다.

그래도 군에 있어서는 가장 존경받아야할 대통령입니다.


군출신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못한 것을 군인들을 위해 한 것이 김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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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

 

◎대한민국최조로 지역감정조장한 사람은 박정희
호남에서 국회의원을 계속 낙방했서 겨우 강원도에서 초선이 된 김대중대과 1971년 정권연장하려던
박정희는 정권 연장을 위해  돈을 써도 이기기 힘든것을 알고  영남은  영남사람을 뽑아야 지역경제가발전한다는 
논리와  영남에 가서 '호남향우회'여 뭉치자 도발 플렌카드를 영남 지방에 유입시켜 '영남향우회' 도발 하여 지역감정이 터지게하고 
 부정선거로 투표를 조작해서 고전 끝에 김대중 후보어렵사리 94만 표 차이로승리를 거둬죠
김대중를 납치하여 바다에 수장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3년에 전두환불러 박정희가 전두환회장으로 하여 노태우 김보성등 경상도지역군인중심으로

구성된`하나회` 만든다 
(운영원칙 충격적이라고한다 막가파와비교되기도했다) 하나회에서 대통령2명 안기부장4명 경호실장4명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32727
하나회명단일부
http://blog.naver.com/ksijk/130022724338


제2의 하나회 영포게이트 영포회를 아십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xzYZDOreAaU

 

 

 

과거 천년동은 전라도 지역은 호남벌, 호남 평야를 중심으로 다른 어떤지역보다도 부유 했고 인구도 많았으며 

고려 왕족의 모계이며 또 고려와 조선시대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고려, 조선 왕조는 대체적으로 전라도인들이 지배한 사회였고.

양반들은 주로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많았으나 박정희의 지역감정조장이후 거의 발전을 못했습니다

전두환 경상남 도합천군

노태우 경상도 대구

박정희 경상북도 선산군

김영삼 경상남도 거제

이명박 고향 경북포항흥해덕성리 태어난곳일본오사카만3세경북포항귀국

 

 

전두환 정권 동안 영남 출신이 장관에 33.0%, 고위 관료에 41.2% 임명되는 등 영남 편중 인사와 
전두환의 광주학쟁로 지역감정이 더욱 심한시킨다

 

 

김영삼 '우리가 남이가' 지역주의로 당선되고  경제를 모르니 맡기긴 했는데  
정부 주변에서 관치금융 논리나 제공하고 영화를 누려온 사람한테 단지 부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맡겼놓고
구조조정은 안 하고 5년 동안 한 일이라곤 한국은행에서 돈 푼 것과 외채 끌어온 것밖에 없었다

 

"MB정권 이후 '형님' 지역 10조원 챙겼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관련 국비지원 사업비가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18&newsid=20101214120034933&p=nocut

 

'형님' 이상득 예산 논란…"포항, 3년간 조 단위 넘어" 
http://www.ithe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734#

 

형님예산 안 부럽다 '마산예산'…영남예산도 큰 폭 증가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60436

 


‘형님예산’ 뒷감당에 10조원 든다
 3년간 따낸 사업 총예산 합하면 9조9676억포항~삼척 철도, 울산~포항 복선전철 등경제성 없어 중단됐던 사업 ‘날치기 부활’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10121419301410623&newssetid=1331

 

 

옛날 언론에서는 호남사건사고을  지역을 발키고 영남사건사고는 지역을 발키지 않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등 호남을 나쁘게 표현했었죠

 

순이익많이 나는 인천공항을 매각하고 밀양에 신공항을 짓는다고 했었죠

전두환 고향과 경상도대부분지역은 무상 급식한다고 합니다

 

전라도 무주가 양보해준 세계육상대회 강원도 평창유치한다고 했는데 지금 대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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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아들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이 해 놓은 많은 공적들이 임기말기에 몇몇사건으로 빛을 발해썻죠

노무현대통령은 임기 말기에 비리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김대중대통령도 아들들의  게이드에 연루되어 임기 말이 불행했습니다


김대중대통령 큰아들 김홍일 그가 풍채가 좋았던거쓴  전기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과 함께 호르몬 분비 이상이 나타나서 몸집이 불었서 그렇게 커졌던거죠


대부분의 민주화 운동가 집안이 그랬듯 그들도 가족 전체가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김대중의 아들인 김홍일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죠.

면전에서 자기의 아버지를 조롱하고 욕하는 자들에게 끔찍하게 고문당하는 것을 참아야 했습니다. 거짓으로 아버지에 대한 죄를 

실토하면 그걸 카메라로 찍어서 이용할려고 준비까지 하고 있는 자들에게 말이죠

결국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를 더 심하게 고문합니다. 신경을 손상시킬 정도로요


이미 한참 전부터 파킨슨병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김홍일 의원이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그가 말하거나 거동하는 것을 TV에서 본 사람들이 거의 없을겁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부축을 해야만 걸을 수 있는 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언론들이 감춰준거였죠


고문후유증으로 평생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큰 아들 김홍일, 아버지 때문에 역시 권력의 탄압을 받고 평생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갖지 못하다가 겨우 국회의원 한번 해 본 둘째 아들 김홍업, 어린 시절 권력에 납치되고 고문받던 아버지를 본 옆에서 

지켜본 충격으로 거의 자폐아나 다름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유증으로 평생 힘든 삶을 살았던 막내 김홍걸.


많은 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 가족사의 저런 비극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몇몇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저들이 무슨 엄청난 

비리라도 저지른 것으로 지금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아들들과 노무현대통령비리사건이 왜 임기 말기에 생겨는지 진상을 확실이 더 조사했스면 합니다


문국현대통령후보는 의원직상실당하고

한명숙장관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6.2 지방선거 이전, 이른바 ‘5만 달러’ 수수 혐의로  기소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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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반대아닌 차선책을 제시한것이다


DJ의 주장대로 서울~강원 간 고속도로가 우선 만들어졌다면? 교양역사서 <타르타르스테이크와 동동구리무>를 펴낸

 정창수 박사는 “강릉은 대도시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부산은 부산대로 지리상 발전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해상교통이 발달하고 해안지역의 전반적 개발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야당의 반대가)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주장은 만들어진 기억”이라고 말했다. 실제는 경부고속도로

개발 반대론이라기보다 차선론이었고,
 나름대로의 대안적 논리가 있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 등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딱지를 붙인 이후 진실로

 둔갑한 ‘조작된 기억’이라는 
설명이다.

1968년 12월 12일 서울∼인천 구간의24km, 4차선이 개통되면서 부터 막이 올랐다는 기록이다.그리고 뒤이어

경부고속도로인 것이다.그러면 당연히 경부고속도로가
 2호인데 어떻게,여전히,역사 사실마저 왜곡.이상하지 않나.현재 이것이 대한민국이고 현주소이고 정치인 것이다.

당시 대일청구권,베트남전쟁,서독,중동특수등 외적 변수요인이 없었다면 야당의 지적은 아주 현명한 지적이였음을 알 것 같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교통편은 이미 존재 하였습니다 일제가 대륙 침탈 목적으로 만들어 놓았던 경부선 철도였죠

그러므로이미 교통편이 있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 보다는 그당시만
해도 전무했던 횡단 고속도로를 건설 하자는 거였지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서울과 강원도를 잇는 고속도로를 말이죠

 


‘경부고속도로 반대’ 야당 시위 사진은 조작
사진이라고 주장이 가능한 ‘고속도로 반대’라는 글씨는 누군가가 사진에 가필(加筆)한 것이다. 사진을 살펴본 장신기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은 “실제 누워 있는 사람의 옷차림이나 체형 등은 김대중 당시 신민당 의원과는 다르다”면서

“일부에서는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김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무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002041139461

 

야당은 다음의 5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1) 서울-부산에는 복선철도가 있는데, 중복투자로 수도권과 영남권 등 일부지역에 편향적 발전과 특혜를 부여한다는

 지역편중의 우려였다.

(2) 고속도로에 대한 예산편중이다. 수송수요가 늘어 도로의 건설은 필요하지만, 왜 일반도로를 증설하지 않고

고속도로에 예산을 집중하느냐의 지적이었다. (도로건설예산 131억원에 고속도로 70%, 일반도로 30%의 배분).

(3) 1965.11∼1966.6까지 한국의 교통상황을 조사한 IBRD(세계개발은행)의 보고서는 철도중심의 수송체계를

도로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유료고속도로의 건설보다는 국도·지방도의 포장에 치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권고에 근거하여 야당이 우선순위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IBRD는 남북종단보다는 동서횡단도로를 권고했다.

 IBRD는 ① 서울-강릉, ② 포항-부산-순천-여수-광주, ③ 삼척-속초, ④ 대전-목포 등 4개 노선의 건설이 더 시급하다는 견해였다.

(4) 관리감독기관장의 직급이 1급 2급으로 위계질서에 어긋난다는 하찮은 문제였고,

(5) 법적 절차의 문제였다.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예산심의도 없었고 설계도 끝나기 전에 서울-오산 구간을

착공했다는 것이다(이 공사는 설계와 공사를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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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히로히토 사망 조문 사진에 대한 해석

 

민족배반자(친일파)의 전통을 물려 받은 자칭보수세력들이

아래의 사진을 가지고

마치,김대중 전대통령이 일왕에게 충성이라도 맹세한 것처럼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닌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박정희랑 똑같은 줄 아시나?

박정희는 당시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교사'신분이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본군에 자진 입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혈서로 천황폐하께 충성을 맹세했더랬지.

김대중 전대통령은 당시 일왕 히로히토가 사망하자

주한 일본대사관저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이것이 '친일행적'인가?

그렇다면 같은 시각,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가 조문을 했던

당시 노태우 정부 관료 수백명은 뭐라고 해야할까?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가 사망했다.

이에 김대중 전대통령은 일본으로 가지 않고

주한 일본대사관저에 가서 조문을 하게 된다.

그날이 히로히토가 사망한지 이틀뒤인 1989년 1월 9일 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김대중 전 대통령이 과거 평민당 총재시절이던
1989년 1월 7일에 사망했던 히로히토 일왕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경향신문의 1989년 1월9일자 2면에 아무런 관련기사 없이
그저 조그만 사진 한장만 덩그랗게 실린 것이었다.


(출처: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9/01/09/19890109KHM02.pdf )



김대중의 히로히토 사망 조문 사진에 대한 해석




당시 경향신문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국가기관지 노릇을 하던 독재정부 아부적 찌라시에 불과해서

알만한 사람들은 절대로 경향기사를 읽지 않던 시절이었음도 언급해 둔다.









한국의 대통령들이나 많은 국제적 정치인들이

방일시에 일본왕을 예방하는데....하물며 그의 사망시에

조문한다는 것은 그런 의례의 연장선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일본자위대의 서울축하연에도 줄줄이 가는 한국정치인들이다.

하물며 일본왕의 공식적 분향소에....나몰라라 한다







김대중의 히로히토에 대한 그런 분향을 "친일매국노"로 몰아가야 한다면

애시당초 방일시 히로히토든, 다른 일왕이든 방문 자체를 거부해야 옳을 것이다.

과연 정말로 그렇게 한 한국의 대통령들이나 국제정치적 정치인들이 있기라도 했던가???







다시 말하면 김대중의 그러한 행동은 국제적 규범을 지극히 중시하는 보수, 우파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에 불과했단 말이다



살아 있는 히로히토에게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머리를 조아리는 짓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망자로서의 히로히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예의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덜렁 그 사진 하나만 찾아다 들이밀며 김대중을 "친일매국노"로 몰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김대중을 악의적으로 폄훼하기 위해 벌이는 사악한 짓이다.





"친일매국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일제시대의 행적으로 판별하는 것이지

그 따위 허접한 조문 사진 하나 가지고 판별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한다.



이승만, 박정희 등은 친일매국노 역사청산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지만

그러나....김대중 시절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런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아두자.

 


(뱀발)
"친일매국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일제시대의 행적으로 판별하는 것이지
그 따위 허접한 조문 사진 하나 가지고 판별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한다.

이승만, 박정희 등은 친일매국노 역사청산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지만
그러나....김대중 시절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런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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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아래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기 바란다.)

http://cafe.daum.net/mmm5785/6yPr/728


[스크랩] 
일왕과 만난 한국 대통령들의 모습

http://cafe.daum.net/antimb/HZNS/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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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항쟁

 

 

 

 

 

 

 

 

조속한 민주주의정부 수립, 전두환보안사령관과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한 신군부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주화 운동입니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으로 군부를 장악과 1980년 초부터 K공작계획을 실행하며 언론을 조종·통제하였습니다 
1980년 5월부터 정치 참여 의도를 드러내는 신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5·17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과 신군부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등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발생했다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계엄 포고령 10호를 선포하여 정치활동 금지령 휴교령 언론 보도검열 강화

등의 조치를 내렸다. 
5월 18일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신현확 전두환 퇴진을 외치면서 시위를 했다
전두환 노태우 등은 박정희대통령의 부마항쟁처럼 광주의 민주화 요구 시위도 강경 진압하면 잠잠해질 것으로 판단,

공수부대 등의 계엄군을 동원하여 진압했다
5월 18일 16시 이후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운동권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닥치는 대로 살상·폭행하는 것을 목격한 광주시민들은 두려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고, 
그 결과 운동권과 무관한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까지 거리로 나서 시위에 참여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5월 27일 0시를 기해 계엄군은 상무충정작전을 실시하여 무력으로 도청을 점령했다.
시민들은 집권세력에 의해 폭도로 매도당한 채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얼굴형체도 알아볼수없게 죽인사람도 많았습니다 
몆천 몇심만을 죽여서라도 투쟁운동을 진압하라고 한 분이시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재현되지 못했던 부분

1.신군부의 5.17군사정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광주 시민들이 시위를 벌인 동기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2.공수부대원들이 시위 진압 도중 대검을 사용하는 장면을 누락했다. 심지어 19일~20일 진압 도중에 19세 여성이 대검에

 가슴을 찔린 사건도 있었다.


3.공수부대원들이 4인 1조로 올라가 주변 빌딩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하는 장면이 빠졌다.

4.신군부는 시위대의 외곽진출을 막기위해 외곽도로를 봉쇄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화려한휴가에서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사건>>을 제외하면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에게 발포한 사건들 상당수가 누락되었다.


5.광주 시민이 단순히 한두 사람에게 지휘를 받은 식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되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광주 시민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토론을 통해 결정하였다. 자율적으로 방범 활동도 벌여 시내 중심의

 금융가,상점가에서 도난 사건이 단 한건도 없었다.

 
광주학살사진  19금입니다
 
 
박정희와 차지철은 대규모인명살상을 모의하고 있다가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한다. 박정희에 의해 무고하게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명예회복은 뒷전으로 밀리고 순교자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김영삼의 짓이라고 믿었고 전두환 노태우는 광주항쟁을 김대중대통령에게 덮어 쒸우고 사형선고를 하죠

반면 전두환은 광주에서 5.18로 인명살상을 현실화하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려고 전두환우상화가 이뤄져왔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부마항쟁은 살인미수 그쳤지만 광주항쟁은 아무 방해없이 살인 범죄행위로 이어져 법의 심판을 받아

 전직대통령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전두환 광주학살과 박정희 부산마산항쟁의 둘의 공통점은 어느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았고,시위대를 폭동이라고 부른것이죠
김영삼이 집권시절 광주학살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은 수감되었죠. 또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 12. 21)·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7. 12. 17) 등이 제정되어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자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으며 그 자격을 박탈했죠


5,000억 원 비자금만들어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추징금 1672억원 중 달랑 300만원 납부 추징금

 시효가 임박하면 압류 등이 들어올 것을 막기 위해 
꼼수라고 하던데  전두환 비자금 5천억 노태우 비자금 5천억 그당시 5천억이면 지금 5조원정도 될것같습니다


전두환 비자금 5천억 노태우 비자금 5천억 76년국가총예산이 4600억이었다 전두환말아먹은게5천억이면 전국민이

 50년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는데
그당시 5천억이면 지금 5조원정도 될것같습니다 둘이합쳐10조

 
 
 
 
 "DJ"인터넷에 허위사실유포한 지만원씨 법정 선다
 
 ‘인터넷에 허위사실 DJ 모욕 ’ 지만원 기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114391&code=940301
 
 
 지만원 "´노´ 묘역 인분투척 ´현대판 윤봉길 의사´"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26607&kind=menu_code&keys=3
 
 
문근영 빨지산 색깔론' 지만원 손배訴 패소 확정” 
http://www.mediapen.com/3/6542/view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5·18은 민중 반란, 4·3은 폭동” 진실화해위원장이 과거사 폄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82115205&code=940100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 김구를 테러분자라고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1221102822150&p=sisain

 

 

 

 각종 역사, 진실위원회 폐지 발표 = 역사말살 및 근현대사 왜곡
1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 폐지발표
2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폐지발표
3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폐지발표
4 친일 반민족 진상 규명 위원회 폐지발표
5 삼청 교육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6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 폐지발표
7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 진상규명 위원회 폐지발표
8 동학 농민혁명 참여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9 특수 임무 수행자 보상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10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폐지발표
11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위원회 폐지발표
12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폐지발표
13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지원 위원회 폐지발표

 

 

80년도에 언론이 어떻게 조작되었나
http://pann.nate.com/video/21309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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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유일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1997년 12월 3일 IMF와 맺은   불공정한계약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 김영삼 대통령 정권에 이미 돈을 받았고 계약서는 쓰여진 상태이고
대선이 다가오자 신한국당(한나라당)은 급한 나머지 급전을 받아서 쓰고 기업매각과 대량해고를 용인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신한국당(한나라당)이 1997년 12월 3일에 IMF와 맺은 이면합의서 내용

▲ 98년 중반까지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 허용 
-> 헷지펀드와 적대적 M&A, 지분참여가 쉬워짐

▲ 건전·시장중심적 금융질서 확립을 위한 금융산업 구조조정 
-> 은행 해외매각 프로그램의 강제 및 손익규모가 모두 까발려짐 
금융권이 해외에 낫낫이 까발려진다는건 나라가 발가벗겨지는것과 같다.

▲ 외국인 주식 소유한도를 98년 2월까지 27% ㅡㅡ> 55%로 확대 
(주식이 50% 이상 외국인이 소유하면 경영권은 주식시장을 통해 넘어간다.)

-> 현재 주식시장에 외인들이 설치는 구조, 한때 SK가 소버린에게 넘어갈뻔 했슴. 
국제 기업사냥꾼들과 단기헷지펀드들이 한국을 제집드나들듯 함. 
취약한 재벌 지분방어시스템으로 삼성까지 넘어갈 우려성 제기.


▲ 채권 시장 : 98년 2월까지 단기자금시장 및 회4채 시장 개방 확대

▲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조치: M&A에 대한 규제 대폭 완화 
-> 적대적 M&A를 통한 한국대기업의 허술한 지분방어선 위협,

▲ 노동시장 유연화 : 정리해고 제한 완화, 파견근로제 도입 
-> 김대중정권이 양극화의 시초로 덤터기 쓰게 된 계기.

▲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IMF 프로그램 지지 성명 발표 등이 포함됐다. 
-> 강제권고된 카드정책 시행, 기업 공적자금제한, 해외강제매각등

 

한나라당이  IMF와 맺은 국부유출 이면 합의서 
내용에 따라 이후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가를 부르고 설자리를 
잃은국민들은 신용불량자로 추락하며 주식시장을 통해 우리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해외 매각이 이루어 집니다.

 

우리 기업들 팔겠다고 IMF와 바보같은 계약서 
맺은 한나라당은 이면합의 계약서 내용을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숨기고 있으며 그 책임을 입만열면 김대중 대통령에 떠넘기고 있죠.

 

 

 

 

 

 

▶김대중 정부 (5년집권시)


외환위기 극복............................(그러나 양극화까지는 극복 못함)

한류 문화산업 육성.......................(2004년 춘사영화제 공로상 수상)

디지탈 IT 지식정보화강국 육성........(각종지표 세계1~3강)

BK21- NT.BT 미래과학기술 육성.........(빛과 그림자..황우석 파동의 후유증을 남김)

한국 경제의 선진화..........최초.최고.....(세계 100대 기업에 최초로 삼성.현대.엘지 입성시킴)

국가부도후 추락한 국민소득을 7,355 달러에서 12,646 달러로 상승시킴 
.
순채권국 만듬................건국이후최초......(1999년 9월부로 순채권국)

세계 국가 경쟁력............역대최고...........(41위 에서 28위까지 급상승)

세계 과학기술 경쟁력.....역대최고..........(28위 에서 12위까지 급상승)
.
.
임기 5년 연속 무역 흑자...................최초.최고.....(846억 달러.)

세계 4위 1200억 달러 외환보유............역대최고.....(국가부도 걱정없는 나라 만듬)

국가신용도평균 7단계 최대 10단계 상승...역대최고....(남북정상회담 이후..급상승)
.
.
연평균 실질 성장률 6.8%..................................................(전두환 정권 9.3%)

연평균 땅값 상승률 -0.2%.............................................(박정희 정권 33.1%)

땅값상승 불로소득 -18조원........................................(노태우 정부 926조원)
.
국내총생산 대비 땅값 총액 2.5 배......역대최하위......(박정희 정권 12배)

기업의 설비투자율 10.6%................역대5위..........(노태우 정부 14.5%)

노동 소득 분배률 59.5%................역대2위.........(박정희 정권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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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846억달러 무역흑자.........역대최고......(박정희 18년간 -233억달러 적자)

2002년 말 실업률 3.1%.............................(박정희 정권 말 17.9%)
.
.
5년동안 신불자 65만 증가..........(김영삼정부 97년말 200만 보다 65만 증가함)

 

 

<역대 대통령 경제 성적표>

이승만 ''''12년집권    -15억$적자  67 -> 82 
박정희 ''''18년집권  - 233억$적자  82 -> 1,636 .. 세계 4위 외채국 만듬.
전두환 ''''''7년집권    + 8억$최초흑자  1,749 -> 4,268 ..세계 4위 외채를 30억 달러까지 줄임.

노태우 ''''''5년집권 -132억$적자  4,268 -> 7,811 
김영삼 ''''''5년집권 -366억$적자  7,811 -> 7,355 ..물러날때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
김대중 ''''''5년집권 +846억$흑자  7,355 ->12,646 
....................................1200억 달러 세계 4위 외환보유국 만듬
....................................1999년 9월부로 대한민국을 최초로 순채권국으로 만듬
(대한민국 통계청 공식기록) 자료출처: KOSIS

 

 

역대 집권자별 실질 경제 성장률 (년 평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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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자(기간)---------한국(%)-----대만(%)----주요국(%)----비교(대만/주요국) 
---------------------------------------------------------------
이승만/장면('53-'61)........4.1.............7.3.............4.5.................3.2 / -0.4 
박정희('61-'79)...............8.5.............10.0............5.2..................1.5 / 3.3 
최규하('79-'81)...............2.1.............6.7..............2.0..................-4.6 / 0.1 
전두환('81-'88)...............9.3.............8.5..............3.6..................0.8 / 5.7 
노태우('88-'93)...............7.0.............7.1..............2.7..................-0.1 / 4.3 
김영삼('93-'98)...............4.3.............6.2..............3.0..................-1.9 / 1.3 
김대중('98-'03)...............6.8.............3.1..............2.0..................3.7 / 4.8 
----------------------------------------------------------------

출처) http://kosis.nso.g o.kr/ 에서, 'KOSIS > 자료출처별 검색(국제통계) >

 

 

역대 정부 부동산 가격 상승 통계자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부__기간__땅값불로소득_연평균상승률(%)_국내총산대비(배)_불로소득/생산소득비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정희63-79.........326조.............33.1..................12.0......................248.8......
전두환80-87..........368조...............14.9.....................7.2.........................67.9.........
노태우87-92..........926조...............17.7...................7.3.........................96.3.........
김영삼92-97.........-103조.............-1.2.....................4.1.........................-5.2.........
김대중97-02........-18조...............0.6...................2.5........................-0.6.........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자료.건교부 ,지가 동향,한국감정원,전국 주요도시 지가 조사

 

 

 





 

 

 


경제학과 교수들이 매기는 경제 운영 점수를 보면   김대중>전두환>노태우>박정희.김영삼 순입니다.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이에

비해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박정희시절은 미국이 역사상 가장 경제적 활황을 이루던 시기였고, 
미국의 지원으로 그당시 중국과 접하고 있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등이 
동반 성장을 하던 시기였고 대일경협차관과, 베트남 전쟁, 독일파견근로자, 독일간호사, 독일광산,

중동노동자들등 국민이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정부로 부터 
특혜를 받은 기업들이 자기돈이 아닌 은행돈으로 필요할때 사용하여 기업발전해 산업구조가 매우

취약해졌고 불균형지역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노조나 노동3권 같은 것은 말만 꺼내도 빨갱이로 몰아 폭압의 사슬과 함께, 저임금 노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김영삼 '우리가 남이가' 지역주의로 당선되고  경제를 모르니 맡기긴 했는데  
정부 주변에서 관치금융 논리나 제공하고 영화를 누려온 사람한테 단지 부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맡겼놓고
구조조정은 안 하고 5년 동안 한 일이라곤 한국은행에서 돈 푼 것과 외채 끌어온 것밖에 없었다


전두환 유일한 장점이라면 자기가 모르면 전문가한테 다 맡긴다는 것 경제분야는 김재익 수석에게

일임했는데 당시 물가를 3%로 잡았었다

 

국가부도낸 박정희을 근대화 아버지로 추앙 
https://www.youtube.com/watch?v=qetnoqBR7zs&NR=1

http://blog.daum.net/yahooook/10777381

 

 


국가부도중이던 김대중의 시기는 가장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아이러니하게 일본을 따라잡고 역전하는 발판을 마련한 시기가 바로 
김대중의 뼈를 깍는 경제 구조조정 시기다.


1997년 한국 망했다고 뒤에서 비웃음 짓던 일본과 대만..
건국이후 한번도 따라잡지 못했던 그런 대만을 2004년 
드디어 멀리 밀어내고 이제는 일본과 경쟁중입니다.


1998년 -6.7%에 달했던 경제성장률도 1999년 10.9%, 2000년 9.3%, 2001년 3%, 2002년 6%로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8/18/0200000000AKR20090818137700002.HTML?did=1179m

 

 

 

국가신용도 평균 7단계 최대 10단계 상승.....1위..............(남북정상회담 이후..급상승)


세계 4위 1200억 달러 외환 보유................역대1위........(국가부도 걱정없는 나라 만듬)

 

세계 국가 경쟁력 역대 최고......................1위..............(41위 에서 28위 급상승)

 

세계 과학기술 경쟁력 역대 최고................1위..............(28위 에서 12위 급상승)

 

5년간 846억달러 무역 흑자......................1위..............(임기 5년 연속 흑자 최초 대통령)

 

건국 이후 최초 순채권국 만듬...................최초.............(2000년 2/4분기부터 순채권국)


연평균 실질 성장률 주변국 (대만 ,주요국) 대비 역대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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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둠속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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